"내가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프리모 레비(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작가)처럼 거대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네. 우리 일상의 조그마한 일들도 우리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가지게 할 수 있다네 (...) 이러한 부끄러움이 없다면 예술을 할 필요가 없다네." - 질 들뢰즈
작은 비겁들을 저지르며 산다.
하고 싶은 일은 참고
하기 싫은 일은 하며
기분이 나빠도
사람 좋은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미움받을 용기와
외로워질 각오가 없어서
작은 비겁만큼
작은 부끄러움을 쌓으며 산다.
"나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아."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너를 좋아해."
마음 속에 숨겨놓은 진심들.
고작 이말을 못해
작은 당당함 대신
작은 부끄러움을 채우며 산다.
부끄러움은
'나'로 살지 못했던 순간의 합이다.
그래서 초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인 나는
자주 비겁한 탓에
작은 부끄러움들을 빚처럼 쌓으며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쌓인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뒤늦게 글 위에 토해 낸다.
무서워서 하지 못한 말을 하고,
무서워서 도망갔던 순간을 반성한다.
그렇게 늦게나마
하루하루 쌓아놓은 부끄러움을
탕감하며 산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자는
예술을 하지 않는다.
초인은 예술을 하지 않고,
이명박도 예술을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예술을 하지 않는 자는
산처럼 쌓인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삶의 무게는
그토록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