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을 끓인다.
냄비에 물을 받아
멸치 다시마 넣고
청국장 큰 두스푼.
보글보글 끓으면
대파, 양파, 애호박, 청양고추 썰어 넣는다.
머얼건 국물.
한 스푼 떠서 맛을 보면
짜기만 한 맹물에 야채 풋내만 난다.
영 맛이 없다.
요리가 서툴렀던 때에는
그 싱거움을 참지 못해
육수, 양념, 야채 돌아가며 넣다가
이도 저도 아닌 찌개를 한솥씩 끓이곤 했다.
그냥 기다리면 되었을 것을.
기다린다.
다시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까지.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또 가만히.
그렇게 20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마법처럼 맛이 잡힌다.
야채 풋내만 나는
싱겁고 멀어건 20분의 시간.
나는 지금
모든 것이 선명했던 시간을 지나
모든 것이 희미한 시간으로 들어왔다.
빙판에 미끄러지듯
가벼웠던 글쓰기도
한줄 한줄 내딛기가 어렵다.
다 아는 것도 같고
다 모르는 것도 같다.
눈이 없는 거머리가 된 것처럼
앞은 캄캄하고 세상은 모호하다.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을.
내가 마주쳤던 순간들.
그 상반되고 모순적인 생각들이
뭉근하게 끓어올라
조화롭게 어울릴 때까지.
마법처럼 맛이 잡힐 때까지.
10분, 20분, 30분.
가만히, 가만히.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넘치지 않게 불을 줄이고
눌지 않게 저어주며.
하지만
조급함에 무엇을 넣지는 말고.
지금 이곳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또 눈이 생기고
세상은 명료해지겠지.
지금은
맛이 배어나는 시간.
맛이 우러나는 시간.
지금은
또 하나의 내가 되어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