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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09. 2020

악착같이 행복해진다는 것

공황, 불확실한 기쁨, 붉은 삶

 오랜만에 공황이 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저려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너의 언어가 가시처럼 느껴졌다. 나쁜 건 나지만,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달이나 지속되던 체기가 다시금 올라왔다. 아니, 육신의 체가 아니라 정신의 체가 시작되었다. 마음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충격에 그간 잘 묻어두었던 온갖 생각과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죄책감, 후회, 안도, 분노, 짜증, 애틋함, 미안함, 부채감. 손 쓸새도 없이 뒤섞여서 튀어나오는 감정과 생각들에 숨이 막혀왔다. 질식할 것 같았다. 연결되지 않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무서웠다. 다시 터널 속으로 돌아갈까봐. 생각해보면 길었던 공황이었다. 스피노자는 공황을 "미래의 악을 피하려는 욕망이 다른 악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억제되어 무엇을 택할지 모르는 상태의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끼어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 공황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어떠한 선택이라도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결국 나는 절벽에 몰려 또 선택을 하게 되었다. 뛰어내렸고, 무서웠고, 괴로웠고, 행복했다.



 겁이 많은 나는 뛰어내리고 나서도 계속 절벽을 되돌아 봤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뛰어내린 건 아니었을까, 싶어서. 하지만 몇번을 뒤돌아 본 끝에 나는 그 순간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했다. 그랬더니 후회가 희미해졌다. 시간을 돌이켜 다시 절벽 위에 선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내렸을 테다. 그래서 다시 공황이 왔을 때 당황스러웠다. 설마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혼란한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하루를 보냈다. 좋아하는 일들을 했다. 춤을 추고 건강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노래를 들으며 빨래를 했다. 마음은 빠르게 평상심을 찾아갔다. 공황의 감정은 사라졌다. 스스로에게 놀랐다. 어제와 오늘 사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왜 마음이 평온해진 거지? 그건 분명 체념도 포기도 아닌, 자기만족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고맙고 미안한 만큼 빚을 갚고, 사랑하는 만큼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모든 일이 생각처럼 아름답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만큼, 나도, 너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나는 요즘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스피노자도 그랬지. 공포를 줄이는 방법은 그것을 미리 자주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나는 이 모든 것을 후회할까 생각해봤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언젠가 나의 스승이 이야기해 주었던 '악착같이 행복하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악착같이 행복하라'는 말은,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불확실한 기쁨이라고 할 지라도 무력한 마음을 견디며 일단 그것을 쥐어 보라는 말이다. 설령 그것을 쥐기 위해서 지금 잡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 기쁨이 허상인지 진실인지는 해보고 난 뒤에만 알 수 있는 것이니까. 세상에 '확실한' 기쁨은 없다. 삶은 온통 불확실성 투성이이고, 불확실성은 오직 그것을 해봤을 때만 '확실'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오로지 불확실성에 뛰어든 자만이 확실한 기쁨을 맛볼 '가능성'이라도 누리게 된다. 물론 그 확실한 기쁨조차 시간이 흐르면 또 불확실해질 테지. 세상에 '확실한 기쁨'은 오직 '순간의 기쁨'밖에 없으니까. 순간은 확실하고 영원은 불확실한 것이니까.


 삶이란 몸으로 견디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신은 젊은이에게 강인한 육신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미성숙한 나는 그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혜롭지 못한 나는 아직 내 행동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내다볼 수 없으니까.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내 몸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내 깜냥보다 덜 걸었다면 마음이 답답할 테고, 내 깜냥보다 더 걸었다면 몸이 아플 테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섬세하게 구분할 수 없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답답하거나 아프겠지. 그래도 내가 젊어서 다행이다. 우울증도 겪어보고 공황도 겪어봐서 다행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몸이 아픈 만큼 정신적 맷집이 늘어난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또 공황이 찾아와도, 심호흡을 하고 글을 쓰며 견뎌내면 되겠지.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나와 너와 우리의 행복을 악착같이 쫒으며. 그 과정에서 피가 좀 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김수영 시인의 말마따나 자유는, 행복은, 어딘가 피냄새가 나는 것이니까. 악착같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건 그런 의미니까. 붉게, 더 붉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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