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 A to Z」(질 들뢰즈) 강독 후기
몇 년 전에 친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 같이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한 친구가 자기가 최근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여러모로 괜찮았는데 ‘치과의사’인 게 별로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치과의사라서 싫었다고?” 놀라서 물었다. ‘치과의사라서 좋았다’고 말했다면 속물적이지만 속물적인 대로 이해했을 텐데, ‘치과의사라서 싫었다’고 말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이유를 말해줬다. 자기가 의대생일 때 같은 학교 치대생들을 보면 쉽게 공부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고 했다. 의대생은 몸 전체를 공부하는데, 치대생은 입 하나만 공부하면 되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렇게 다루는 범위로만 따지자면, 사람 몸 하나 공부하는 의대생들은 우주를 공부하는 천문학도들에 비하면 ‘공부 안 하는 애들’일 테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친구는 의대에서 공부에 시달렸던 시간이 꽤 고달프고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가 견뎌낸 의대생의 삶은 특별하다 여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열등하다 여기게 된 것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는 길, 가슴 한 켠이 답답해졌다. 고등학교 때 다 공부 잘 했던 아이들끼리 모여서 또 의대냐, 치대냐를 가지고 계급을 나누는 게 씁쓸해서다. 변호사인 친구가 법조계에서도 아직도 판사, 검사, 변호사에 따라 계급을 나눌 뿐만 아니라, 요즘은 사법고시 출신이냐, 로스쿨 출신이냐를 가지고도 은밀하게 차별이 많다는 이야기한 것도 떠올랐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도 학과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 구분이 있었다. 그 친구가 의대와 치대를 구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대학 자체가 이미 명문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끼리 모여 무슨 학과는 ‘성골’이고 무슨 학과는 ‘6두품’이니 하며 그 안에서 또 구분을 지었다. 물론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내 삶은 구분짓기의 반복이었다. 나의 특별하고 싶은 욕망은 구분짓기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은 결과였다. 내 삶을 이미지화 하자면 이렇다. 큰 운동장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손’이 운동장에 원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스무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놀라서 함께 놀던 친구들을 밀치고 잽싸게 뛰어 그 원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며칠 뒤,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나타나 원 안에 더 작은 원을 그리고, 이번에는 그 안에 다섯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원 안에, 더 작은 원 안에, 더더 작은 원. 그렇게 나는 더 작은 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 반복이 멈춘 건 미국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다. 그 전까지는 그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기’ 경쟁에 늘 성공해왔으니까. 평범한 중학생들 사이에 있다가 ‘민족사관고’라는 작은 원에 들어갔고, ‘민족사관고’라는 원 안에 있다가 ‘와튼 스쿨’이라는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갔다. 심지어 ‘와튼 스쿨’이라는 원 안에서도 ‘헌츠맨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학생 40여명을 선발해 관리하는 프로그램 안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현타가 왔다. 대학교 2학년 때쯤, ‘이 다음 원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투자은행에 취직하는 건가’ 하며 진로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앞으로 내가 들어가야 할 무수한 원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잠깐만, 그럼 투자은행 다음에는 뭐지? 그 투자은행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건가? 그럼 좋은 실적을 낸 다음에는 뭐지? 그렇게 계속 원 안에, 원 안에, 원을 쫒다보면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원 안에 못 들어가는 것 아닌가?' 유치하지만 그 당시 나는 세상을 피라미드 구조라 보았고, 그 정점에 미국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지금 이 원까지 오기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계속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는 경쟁을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부터 길고 긴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해본 게 없어서, 그 목표가 흔들리자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서 맨날 고민하고 좌절했다. 고작 스물 몇 살밖에 안 된 게, 참 쓸데 없이 비장했다. 그냥 그날 하고 싶은 걸 하면 됐는데 말이다.
「질 들뢰즈 A to Z」에서 파르네가 들뢰즈의 유년시절에 대해 묻는 부분이 있다. 들뢰즈는 꽤 유복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자랐다고 했다. 들뢰즈가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유독 나 혼자 깔깔 소리를 내며 웃은 부분이 있었다. 들뢰즈가 청소년기에 ‘도빌’이라는 곳에서 일 년을 공부했는데, 그때 프랑스에 처음으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유급 휴가가 생겼다고 했다. 유급 휴가를 받은 노동자들이 휴가를 즐기러 도빌 해변에 놀러 온 상황을 들뢰즈가 이렇게 표현한다.
들뢰즈: 도빌 해변에 유급 휴가를 받은 사람들이 물결 같이 밀려오던 것이 기억나네. 도빌 해변이란 원래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이 찾아오는 해변이었어. 부르주아들의 장소였다네. 그런데 유급 휴가를 받게 된 사람들이 처음으로 오게 된 거지. 아주 대단했어. (...) 나의 어머니는 아주 고상한 사람이었는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해변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니까. 그러니까 부르주아들에게 있어서 계급의 차이를 잊는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야.
파르네: 그들이 가졌던 두려움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세요.
들뢰즈: 부르주아의 두려움은 절대 끝날 수 없는 것이었지. 그것은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영토에 관한 문제였다네. 서민 계층이 갑자기 몰려와 도빌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니. 부르주아들에게 그것은 공룡이나 독일군이 몰려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을 거야. 독일군이 탱크를 몰고 도빌 해변에 진격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을 거라고. (...) 내 생각에 부르주아들은 그런 두려움을 세습하는 것 같다네.
들뢰즈의 말을 듣고, 정말 부르주아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뢰즈의 어머니에게서 우리 엄마의 모습이 보여서 큭큭 웃음마저 터져 나왔다. 엄마는 내가 동네를 돌아다닐 때 옷을 잘 차려입지 않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혹시라도 내가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까봐서다. 엄마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동네에는 정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은근하지만 분명한 혐오의 시선이 쏟아졌다. 마치 남루한 행색을 하고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갔을 때처럼 말이다.
도빌 해변에 노동자가 들어온 상황도 비슷했으리라. 그 시선은 ‘너는 이 영토에 어울리지 않으니 들어오지 마!’라는 의미다. 그래서 들뢰즈가 부르주아들에게 도빌 해변의 상황은 독일군의 ‘침입’에 버금간다고 한 것이다. 들뢰즈가 그것이 부르주아와 그들의 영토문제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영토를 규정한 뒤, 그 영토를 사수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 영토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들 뿐,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 것은 ‘침입’으로 간주한다. 자신들과 다른 존재가 섞여버리는 순간, 그 영토는 더 이상 그들의 영토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토와 그 밖의 구분. 그것이 부르주아들의 영토 문제다.
내가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했던 ‘구별짓기’도 부르주아의 영토 문제에 맞닿아 있다. 나의 사고방식은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야만 칭찬과 인정을 받아 소외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건,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영토 안에 남아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믿는 마음과 동일하다. 그것은 사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운동장에 원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원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부추기던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그 원들의 중심에 있다. 권력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린 뒤, 중심에 가까운 원에 들어올수록 칭찬과 인정을, 중심에서 먼 원으로 밀려날수록 소외와 불행을 얻을 거라 겁박한다. 사람들을 그 말을 믿고 더 작은 원에 들어가려 애를 쓰는 동시에 자기가 현재 있는 원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전전긍긍한다.
그런 권력의 속삭임에 가장 크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르주아다. ‘더 작은 원으로 들어가라’는 권력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자들만이 부르주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은 영토에 대한 집착이 매우 크다. 그들에게 영토 밖으로 밀려나는 공포는 거의 불지옥에 떨어지는 공포에 비견한다. 나는 부자 동네에 살며 그런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우리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다른 동네로 이사가야 하는 상황을 견디질 못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 한동안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물리적인 영토가 아닌, 사회적인 영토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들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 그 안에서 또 고시에 붙지 못한 친구들은 ‘고시’라는 영토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위축감 때문에 동창회에도 잘 나오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을 말아 먹고, 앞으로 글 쓰고 철학하며 백수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도, 한동안 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위축되기 일쑤였다. 영토 안의 그들이 영토 밖의 나를 조롱할까봐 겁이 나서다. 연예인들이 유명세에서 멀어지면 먹고 살만한 경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지 못하는 이유도, 모범생이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정년퇴직 후 가장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도, 모두 자기가 속했던 영토에서 밀려났다는 불안과 상실감에 기인한다.
나는 그 공포를 잘 알고 있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부르주아는 그 공포를 세습하기 때문이다. “너는 곱게 자라서 험하게 못 산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아니?" 아버지가 종종 하던 말이다. 우리 부모만 그랬을까. “너 공부 안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 부모도 아이한테 영토 밖의 공포를 주입한다. “너 회사 를 떠나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사장도 사원들에게 영토 밖의 공포를 주입한다. 그렇게 권력이 주입한 수많은 공포들이 내면에 각인되어, 결국 우리는 모든 인생을 영토를 사수하는데 쏟아 붓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그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도 지금 딛고 있는 이 물리적, 사회적 영토에서 밀려나는 것이 당연히 두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원에서 더 작은 원으로 들어가고 들어간 끝에 발견한 것은 행복은 커녕 더 큰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작은 원으로 들어가도 근원적인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작디 작은 원 안에서 또 치과의사와 영토를 구분지으려고 애를 쓰던 그 의사 친구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작은 원 안에 없다. 행복은 원 밖에 있다. 세상은, 역동적으로 살아숨쉬는 진짜 세상은 원 밖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