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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16. 2021

'구분짓기'라는 신기루 (1)

"그것은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영토에 관한 문제였다네."

 몇 년 전에 친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 같이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한 친구가 자기가 최근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여러모로 괜찮았는데 ‘치과의사’인 게 별로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치과의사라서 싫었다고?” 놀라서 물었다. ‘치과의사라서 좋았다’고 말했다면 속물적이지만 속물적인 대로 이해했을 텐데, ‘치과의사라서 싫었다’고 말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이유를 말해줬다. 자기가 의대생일 때 같은 학교 치대생들을 보면 쉽게 공부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고 했다. 의대생은 몸 전체를 공부하는데, 치대생은 입 하나만 공부하면 되니 말이다. 물론 그녀의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 그렇게 다루는 범위로만 따지자면, 사람 몸 하나 공부하는 의대생들은 우주를 공부하는 천문학도들에 비하면 ‘공부 안 하는 애들’일 테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친구는 의대에서 공부에 시달렸던 시간이 꽤 고달프고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가 견뎌낸 의대생의 삶은 특별하다 여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열등하다 여기게 된 것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는 길, 가슴 한 켠이 답답해졌다. 고등학교 때 다 공부 잘 했던 아이들끼리 모여서 또 의대냐, 치대냐를 가지고 계급을 나누는 게 씁쓸해서다. 변호사인 친구가 법조계에서도 아직도 판사, 검사, 변호사에 따라 계급을 나눌 뿐만 아니라, 요즘은 사법고시 출신이냐, 로스쿨 출신이냐를 가지고도 은밀하게 차별이 많다는 이야기한 것도 떠올랐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도 학과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 구분이 있었다. 그 친구가 의대와 치대를 구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대학 자체가 이미 명문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끼리 모여 무슨 학과는 ‘성골’이고 무슨 학과는 ‘6두품’이니 하며 그 안에서 또 구분을 지었다. 물론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내 삶은 구분짓기의 반복이었다. 나의 특별하고 싶은 욕망은 구분짓기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은 결과였다. 내 삶을 이미지화 하자면 이렇다. 큰 운동장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손’이 운동장에 원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스무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놀라서 함께 놀던 친구들을 밀치고 잽싸게 뛰어 그 원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며칠 뒤,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나타나 원 안에 더 작은 원을 그리고, 이번에는 그 안에 다섯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원 안에, 더 작은 원 안에, 더더 작은 원. 그렇게 나는 더 작은 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 반복이 멈춘 건 미국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다. 그 전까지는 그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기’ 경쟁에 늘 성공해왔으니까. 평범한 중학생들 사이에 있다가 ‘민족사관고’라는 작은 원에 들어갔고, ‘민족사관고’라는 원 안에 있다가 ‘와튼 스쿨’이라는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갔다. 심지어 ‘와튼 스쿨’이라는 원 안에서도 ‘헌츠맨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학생 40여명을 선발해 관리하는 프로그램 안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현타가 왔다. 대학교 2학년 때쯤, ‘이 다음 원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투자은행에 취직하는 건가’ 하며 진로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앞으로 내가 들어가야 할 무수한 원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잠깐만, 그럼 투자은행 다음에는 뭐지? 그 투자은행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건가? 그럼 좋은 실적을 낸 다음에는 뭐지? 그렇게 계속 원 안에, 원 안에, 원을 쫒다보면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원 안에 못 들어가는 것 아닌가?' 유치하지만 그 당시 나는 세상을 피라미드 구조라 보았고, 그 정점에 미국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지금 이 원까지 오기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계속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는 경쟁을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부터 길고 긴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더 작은 원 안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해본 게 없어서, 그 목표가 흔들리자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서 맨날 고민하고 좌절했다. 고작 스물 몇 살밖에 안 된 게, 참 쓸데 없이 비장했다. 그냥 그날 하고 싶은 걸 하면 됐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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