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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04. 2021

사랑받고 싶은 사람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래도 도망 다녔다.

때로는 명예로,

때로는 페미니즘으로,

때로는 사업적 성공으로,

때로는 철학으로.

전부 다

사랑하지 않은 채로

사랑받으려고 했던

어리석은 시도였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동시적이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불특정 다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 없는 타자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얼굴이고 표정이고

함께 울고 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해 주는

예쁘다는 한 마디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그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자각은

나를 작고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위축의 무력함이 아니다.

기쁨의 무력함이다.

풍선처럼 부푼 자아가

제자리를 찾아

겸손하고 평온해지는 마음이다.


참 오래도 돌아왔다.

나는 사랑의 각성이 늦었다.

하지만 후회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나는 이제 진짜 사랑받고 싶어졌으니까.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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