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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19. 2021

사랑의 회계장부

"혜원아, 사람은 모름지기 경우가 발라야 한다."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종종 하던 말이다. 아버지는 사업을 40년 가까이 했다. 가끔 생각해 본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가. 사업은 잘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속하는 것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업을 40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아버지의 어떤 역량 때문일 테다. 대학을 졸업하고 종종 아버지의 사회 생활을 어깨너머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아버지는 어떤 관계에서든 자기가 받은 것과 준 것을 철저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누군가에 공짜로 받는 것을 싫어했다. 아마 오랜 사업 경험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짜로 받은 것은 나중에 더 큰 부채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도움이든 거래든 누군가에게 뭘 받으면 반드시 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었다. 반대로 돌려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경우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직원들도, 거래처도, 지인들도, 가족들도 투덜투덜 대면서 아버지와 몇십년씩 관계를 유지했다. 모두들 아버지가 받은 만큼 챙겨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가가 내 것만 챙기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런 전략으로는 결국 내 것도 못 챙기게 되기 때문이다. 삶도, 사업도,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직원이든 거래처든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잘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것을 잘 챙기려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들과의 관계가 흔들리면 결국 손해는 나도 보게 되니까 말이다. 사업가는 내 것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 것을 지키려고 할 때, 그러니까 진정으로 탐욕을 쫒을 때, 사업가는 역설적으로 내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밖에 없다. 그래야 더 오랫동안 자기 것을 지킬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마크 주커버그 같은 기업가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그것은 그저 내 것을 더 오래 챙기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인 회계장부다.





"넌 관계에서 늘 회계장부를 돌리고 있지. 그래서 난 네가 차갑게 느껴졌던 순간이 많았다."


어느 날,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스승이 말했다. "너는 경우가 바른 사람이다. 너는 나에게 받으면 갚고, 손해를 끼치면 메우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스승과의 관계에서 돌리고 있던 머릿속 회계장부가 떠올랐다. 나에게 스승은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중요한 사람과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마음이었을 테다. 나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스승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스승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래서 늘 머릿속에서 철저하게 회계장부를 돌리고 있었다. 스승이 나에게 잘해주면 갚으려고 애쓰고 내가 잘못하거나 민폐끼친 것은 철저하게 기억해두려고 했다. 가끔은 스승이 너무 많은 사랑을 주서 이걸 언제 다 갚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 회계장부가 차갑게 느껴졌다는 스승의 말에 당황했다. 나는 투명하고 깔끔한 거래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 또한 경우가 바른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욕을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주고 싶지 않으면 애초에 받지를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받으면 반드시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받은 것과 준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가, 그 회계장부의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울면 다시 수평을 맞췄다. 그래서 관계에서 욕먹은 적도, 서운한 적도 없었다. 나는 늘 플러스-마이너스 0의 상태를 유지했으니까. '나 받은 만큼 갚았으니까 나에게 바라지마. 나 너에게 돌려줄 마음 없으니까 나에게 주지마.' 내 마음 속에는 차가운 회계사가 살고 있었다. 나는 삶에서는 이데아만 쳐다보고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대차대조표만 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내가 종종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듣는 건 그 때문일 테다.


"그런데 제 머릿속 회계장부는 의식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동적으로 기록되는 거에요. 그러면 전 앞으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해요?"


"회계장부를 없애려고 하지 말아라. 차이나는 회계장부로 나아가라."


 스승의 말을 듣고 웃었지만, 여전히 의아했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승부를 보려면 그것의 변주를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 회계장부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다른 회계장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도대체 '차이나는 회계장부'가 무엇인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1년 전 이맘 때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내 마음 어딘가에 '차이나는 회계장부'라는 말을 묻어두었나 보다. 그 대화가 오늘 다시 꽃을 피우는 걸 보면.





"너는 왜 그렇게 잘해줘?"

"미안하잖아. 고마운 것도 많고."

"내가 보기에 그건 이미 갚고도 남은 것 같은데."

"아니야. 나 아직 되게 미안해."

"너 요즘 회계장부가 엉망이다."


며칠 전 친구와 나눈 대화다. 그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몇년 전에 내가 스승에게 했던 철없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쌤은 왜 이렇게 사람들한테 잘해 줘요?"

"고맙잖아."

"뭐가 고마워요?"

"다들 힘든데 여기까지 찾아와 주는 게 고맙잖아."

"에이, 그거에 비하면 쌤은 너무 잘해주잖아요. 참 고마울 것도 많네요."


 난 항상 의아했다. 스승은 왜 사람들에게 저렇게 잘해줄까. 스승은 고맙고 미안해서 잘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관계의 저울이 영 수평이 안 맞아보였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스승에게 조금 잘해주고, 스승은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주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비슷한 것인가 생각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아이가 어느 날 고사리손으로 사탕 하나를 선물이라고 주면 그간의 고생을 다 잊을 정도로 마음이 그득 찬다고 하니까. 이타심은 이기심이라고 했다. 사랑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야 그 아리송한 말들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난 왜 회계장부를 엉망으로 쓰기 시작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하고 싶어서다. 나와 다른 타자를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된 일이다. 사랑하면 서럽고 상처받고 무력해진다. 그 사랑의 고됨을 견디려면 어떤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내가 너를 더 오래 사랑할 이유를 찾는 마음의 작용. 그것이 바로 '차이나는 회계장부'의 정체다. 고되고 힘들어도 너를 계속 사랑하려면 너에게 계속 고맙고 미안해야 하니까 내가 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내가 받은 것은 10배의 가치로 부풀려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말도 안되는 바보 같은 거래법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회계장부였던 것이다.




관계의 회계장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준 것을 기록하고 네가 준 것은 잊는 것.' 이기심의 회계장부다. 그 회계장부는 오래 갈 수 없다. 세상에 이용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사람의 회계장부는 결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한다. 계속해서 적자만 쌓이는 마이너스의 관계가 파산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내가 준 것을 기록하고 네가 준 것도 기록하는 것.' 거래의 회계장부다. 그 회계장부는 오래 간다. 세상에는 이용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1000원을 주고 1000원을 돌려받는 관계는 파탄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관계는 무의미하다. 그 관계에는 여분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1000원을 주었기에 나는 1000원을 준 것이고 내가 1000원을 줬기에 네가 1000원을 준 것일 뿐, 거기에는 여분의 마음이 없다. 플러스-마이너스 0의 관계는 지속되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0의 땅에서 생성은 일어날 수 없다.


'내가 준 것은 잊고 네가 준 것은 기록하는 것.' 사랑의 회계장부다. 이 회계장부도 오래 갈 수 없다. 어찌보면 이는 이기심의 회계장부를 뒤짚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심의 회계장부가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다면, 사랑의 회계장부는 관계를 사랑으로 몰고 간다. 이곳에는 여분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가 100원을 주었는데 내가 1000원을 주면 900원의 여분이 생긴다. 그리고 네가 준 100원을 1000원이라 생각하면 나의 마음도 찬다. 그런 바보 같은 거래법으로 관계 속에 마음이 쌓인다. 고맙고 미안해서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준 마음들이 쌓이고 쌓인다. 그 쌓인 마음 속에서 사랑이 싹틀 잠재성이 생긴다. 거래의 회계장부에는 여분이 없기에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줄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의 회계장부에는 여분이 있기에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줄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이 꽃필 작은 잠재성이 생긴다.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한 다면 사랑하는 것은 손해 아닐까?'


아마 이 마음이 내가 사랑의 회계장부로 나아가지 못했던 근본적인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이타심은 이기심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내가 준 사랑을 내가 되돌려 받을 확률은 지극히 적다. 내가 물을 준다고 해서 내 앞에서 꽃이 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근시안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사랑은 시간 속에서 보아야 한다.


 사랑은 택배 배송 같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 앞에 선물 상자를 놓고 가는 일 뿐이다. 그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선물 상자를 발견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그래서 사랑하면 무력하고 호구가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이는 끝끝내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선물을 놓고 갔던 이는 상처를 받는다. 내가 준 사랑을 되돌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을 하려면 내가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그때 나도 보게 된다. 닫혀있던 내 문 앞에 예전에 누군가가 두고 갔던 선물 상자들을. 내가 사랑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하나씩 열때마다, 나 또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예전에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받게 된다.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던 그 시선. 나를 하염 없이 기다려주었던 마음. 나에게 혹시라도 상처줄까봐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고민해서 썼을 편지들. 철없는 나를 보며 속 터졌을 거면서도 내 옆에 계속 있어주려고 바보 같은 회계장부를 돌리며 나에게 고맙고 미안해 했을 마음. 아직도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한 만큼, 그 마음을 다 받지 못했겠지. 조금씩 마음을 열며 문 앞에 쌓여있는 선물상자를 볼때마다 고맙고 미안해진다. 그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나 또한 누군가의 문 앞에 선물상자를 두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허구가 아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표현된 사랑은 실체다. 사랑은 실체이기에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밑빠진 독에  붓기가 아니다. 사랑은  앞에 선물을 두고 가는 것이다. 선물은 발견되지 않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받은 사랑이  마음 어딘가에 쌓여 있었듯이. 내가 선물을 두고   네가 문을 열고 나온다면 우리는 만날  있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선물은 계속 거기에 있을 테니까. 언젠가 네가 문을 열고 나와 그것을 발견한 , 나처럼 너도 고맙고 미안할 테니까.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 되니까.  지난 사랑이 나에게 그랬듯,  스승이 나에게 그랬듯,  스승의 연인들이  스승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받을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사랑은 시차를 두고 발견될 , 사라지지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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