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미술사, 전공자에게는 필수이며, 비 전공자에게는 필수 교양이다
앞서 현대미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교육관의 결론이 AI시대를 염두해둔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분야는 제가 근래 들어 강조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교육관과 큰 연관이 있지요. 바로 '미술사'의 중요성 입니다.
현대미술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비단 현대미술뿐 아니라 미술 전반의 흐름과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갈 AI 시대에 중요한 ‘힌트’를 얻는 열쇠가 되어줍니다. ‘과거를 모르면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곧 미래에 대한 방향을 과거 속에서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미술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단순한 그림 실력 만큼이나—아니, 그 이상으로—중요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AI의 복제와 재창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어떤 작가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크게 두 부류의 작가가 있겠죠. 하나는 AI, VR, AR 등 새로운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작업’을 해내는 작가들입니다. 저로서는 자신이 없지만, 어느 작가의 능력 안에서는 이 두 부류가 하나로 융합 될 수도 있겠습니다.
AI가 하지 못하는 작업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오리지널리티’와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닌 창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살아남는 작가의 기준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미술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
그러므로 ‘미술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해 없이 만들어낸 작품은, 오히려 AI가 생성한 이미지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AI, VR, AR 등 새로운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은 미술사를 몰라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보일 순 있겠지요. 하지만 알아야 활용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주 간단히, 생성형 AI의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적는다고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내가 가상공간에 조각상을 띄우려고 하는데, 마티스의 노년기 컷아웃 작품의 느낌을 담아 더 단순하게 변경해줘.' , '내가 그린 인물화를 좀더 이상적인 인체비율로 변경해줘. 보티첼리의 작품이 이상적인 비율인 것 같아. 그의 작품 '봄'을 참고해서 수정해줘.'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작가와, "더 단순하게 해줘.", "아니 더 단순화 시켜.", "아니 지금은 너무 단순해졌어." 하고 말하는 작가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나겠지요?
두 번째 이유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미술계는 ‘현대미술 시장’을 빼고는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풍자하고 놀았던 현대미술시장은 곧 작가가 될 아이들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무대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니까요.
현대미술,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번에 다량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 문화로서 미술을 향유하는 방법이 제일입니다. 미술 교과서로 시험과 수행평가를 위한 벼락치기 외우기를 하는 것은 머릿속에 별로 남지 않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고, 듣고, 작가와 그림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과정이 훨씬 남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구성해 주어야 합니다.
저희 원에서는 두세달에 한 번씩은 작가수업을 합니다. 보고, 듣고, 작가와 '그림'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경험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작가수업은 그저 유행이라서 따라하는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이 수업을 해야 하는가, 왜 이 수업을 배워야 하는가를 알고 수업이 이루어져야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미술학원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배우는 이유는 적절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저 SNS에 유행중인 다른 학원의 수업작품 카피가 되어선 안 되는데, 여러 학원이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가 수업의 유행들이 자주 눈에 띄이곤 할 때 아쉽습니다. 최초로 어느 작가에 대한 수업을 고안해낸 선생님들의 마음은 그저 예쁜 황금색의 작품 한 장을 부모님께 전송 드리려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속에서 활동을 하려면 미술의 큰 배경을 알고 있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저 자신의 작품에만 몰두해 그림 그리기만을 좋아하는 우리 학생들도 언젠가는 그 작품을 가지고 현대미술 시장으로 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미래에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까?’,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에 대해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 좀 더 상업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성공할까?’, 좀 더 작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를 고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제 경우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고민의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을 때, 두서없이 방황하기 보다는 큰 맥락을 알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맥락을 잡기에 현대미술을 포함한 미술사 지식이 매우 도움이 되었고요.
여담이지만, 꼭 화가만이 미술에 대해 알아야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어떤 학생은 현대미술 시장에서 그림을 파는 화가가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학생은 수집가가, 어떤 학생은 시장을 움직이는 예술경영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미술과 연관되어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큐레이터, 도슨트, 미술 치료사, 교사, 평론가 등 다양합니다. 연관된 직업조차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저 배워서 전시회를 다니고, 해외여행을 다니기만 하더라도 인생이 참 풍성해집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 좋은가보다 하고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감상이 아니라, ‘나는 어떤 그림이 취향인가.’와 같은 재미난 질문을 던질 수 있으려면 미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제 바램은 우리 아이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존재들로 자랐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맥락을 배우는 것은 우리나라 실정상 입시에 치여사는 중고등생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유 초등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해도 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도 결국 미술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 이 쪽으로 근접하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미술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AI시대에도 말이지요.
*급변하는 AI시대, 미술 전공자의 현직 전문가 다운 시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