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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Aug 21. 2019

나로 돌아가다

날 치유해 준 맑은 영혼들

내 모든 집중을 다른 곳으로 돌릴 뭔가의 일이 필요했다. 회사로 조기 복귀하는 것도 생각했는데 하는 일의 특성상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남의 감정을 살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고, 특히 새로운 남자를 대하는 것은 그냥 두려웠다. 멀쩡하게 생긴 저 사람의 숨겨져 있는 공격성과 도착증이 왠지 나를 만나면 발현될 것 같았다. 주변에 '내 심리적 상태가 이러하여 일을 잘할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양해를 구하며 억지로 일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일단은 좀 더 정신적 회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 생활과 전혀 다른 뭔가의 일을 하는 거였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그 사람들을 피하려면 내가 한국을 떠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은 도망치고자 이거 저거 알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일이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아주 좋았다.


꽤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은 마냥 나를 좋아해 주었다. 매일 아침 날 보고 달려와서 안아주고, (안겼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안기는 기분이었다.) 무릎에 와서 고,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헤어지게 되는 며칠 전부터 몇몇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다며 울기 시작했다.


"그냥 우리 여기 다 같이 살면 안 돼요? 제가요, 저기 홈리스들처럼요, 박스 깔고 울고 있으면 그래도 돈 좀 벌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로 먹고살면 돼요. 나 쌤이랑 헤어지기 싫어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처음엔 저 발상이 너무 웃겨 웃다가, 점점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고마웠다. 이런 순수한 사랑을 내가 어디서 이렇게 받을 수 있을까.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솔직히 다 좋지만은 않았다. 아이들 때문이라기보다는 또 이 일에 엮여있는 어른들 때문에. 하지만 온전히 집중할 무언가를 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여기에 몰입되어 있을 때는 딱 이거 하나만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진짜 얻은 것은 더 중요한 것에 있었다. 이 맑은 영혼들과 함께 하면서 내 마음이 많이 치유됐다는 점이다. 이전의 나로 많이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그 사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잊으려 해도 온통 그 사건만 가득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는 거 자체가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누군가한테 먼저 연락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오는 연락을 받아도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반갑지가 않았다. 만나자고 하면 어떻게든 안 만날 핑계를 만들었다. 그나마 만나도 괜찮겠다는 사람들을 만나도 행복하지 못했다. 그냥 내 행동 하나하나가 빨리 원상복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 행동들 뒤에는 더 우울해졌다. 진짜 나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날 더 암담하게 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먼저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중 한 사람에게 많이 활력이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스스로도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 카톡 인사 하나에도 드러나나 보다. 그 말에 용기가 생겼다. 진짜 나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던,

날 마냥 좋아해 주던,

그 맑은 영혼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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