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소비, 스마트한 선택
“조말론 향수와 거의 같은 향의 향수를 4.5파운드에 구매했다”
“디올 가방 듀프를 5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틱톡에서 ‘dupe(듀프)’를 검색하면 이런 체험담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자랑하듯 올리고, 누군가는 팁처럼 공유한다. 브랜드보다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 이 기묘한 소비문화. 지금 Z세대는 굳이 정품을 사지 않는다. 대신 그와 거의 흡사한 무언가를 찾는다. 싸다고 그냥 사는 건 아니다. 이건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전략이다.
듀프는 Duplication의 줄임말이다. 보통 고가 브랜드 제품과 유사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가지면서도 훨씬 저렴한 가격의 대체품을 말한다. 예전 같으면 ‘짝퉁’이란 말로 경계받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듀프는 명품을 모방한 저가 상품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감이 높은 ‘스마트한 선택지’로 받아들여진다.
듀프 제품은 패션과 뷰티, 전자제품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퍼지고 있다. 유니클로가 르메르와 협업한 ‘유니클로 U’는 ‘르메르맛 유니클로’라는 별명이 붙으며 인기를 끌었고, 자라 역시 르메르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르메르맛 자라’라 불린다. 버켄스탁의 샌들과 유사한 착용감을 내세운 H&M의 샌들 역시 듀프 소비를 자극했다.
다이소에서는 샤넬 립 앤 치크밤과 유사한 제품이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판매되고 있고, 가전 시장에서는 샤오미가 파괴적 가격으로 삼성·LG를 위협하고 있다. 단지 싸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비슷한 효과라면 굳이 비싼 걸 고집할 필요 있나?”라고 묻는다.
소셜미디어 리서치 기업 민텔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SNS에서 ‘듀프’라는 단어의 검색량은 약 3배 증가했다. 모닝컨설트의 조사에서는 미국 Z세대의 절반 이상이 일부러 듀프 제품을 선택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듀프를 통해 똑똑한 소비자라는 인식을 원하고, 자기가 찾은 듀프 정보를 SNS에 공유하며 일종의 ‘안목’을 드러낸다. 이른바, 경제적 결정을 가장한 ‘사회적 큐레이션’인 셈이다.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행위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소비를 ‘자기표현적 소비’라고 말한다. ‘이걸 샀다’보다 ‘이걸 이 가격에 샀다’는 말이 더 뿌듯한 시대다.
와이펄스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69%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럭셔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듀프를 소비한다고 했다. 60%는 “정품을 살 여유가 있어도 여전히 듀프를 선택한다”라고 답했다. 절반 가까이는 “복제품을 찾는 행위 자체가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싸게 잘 샀다는 사실이 일종의 '승리'로 여겨지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시대다.
마케팅 전문가인 노스웨스턴대학의 자클린 밥 교수는 “이들은 듀프 상품을 ‘명예의 휘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일부러 복제품을 구매한다”면서 “돈을 아끼려는 경제적 결정이 아닌 의도적인 큐레이션”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마케팅 전문가인 찰스 린드시 버팔로대 교수는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했는지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이 구매하는 제품이 유명 브랜드인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는 Z세대의 ‘동지애’로 설명할 수 있는데 소셜미디어 사용이 일상화된 이들은 쏠쏠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데 마치 화장법이나 투자 팁을 틱톡으로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듀프 상품 구입 정보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더피프스의 벨라 할스 연구원은 “저렴한 가격 제품을 찾는 건 승리이자,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며 “이들은 정보 공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패션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트렌드는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떤 브랜드는 창작 의지를 꺾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어떤 브랜드는 기민하게 대응한다. 룰루레몬은 ‘듀프 스왑’이라는 이름으로, 듀프 제품을 정품으로 교환해 주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엔 약 천 명이 몰렸고, 그중 절반은 룰루레몬 정품을 구매해 본 적 없는 고객이었다. 브랜드 체험의 문턱을 낮춰 신규 고객을 유입하고, 결국 ‘진짜는 다르긴 다르다’는 경험을 유도한 셈이다. 이 또한 넛지의 방식이다. 소비자의 판단을 교묘히 유도하되, 선택은 소비자에게 맡긴다.
고물가가 이어지는 지금, 듀프는 합리적 소비를 넘어 윤리적 소비로 확장되고 있다. 어떤 소비자는 고가 브랜드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과 거품 가격에 피로를 느낀다. 그보다는 비싸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소비, 내 예산 안에서의 최고의 선택을 추구한다. 이른바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잡는 소비다. 듀프는 지금의 Z세대를 닮았다. 브랜드가 전부가 아니라, 내가 좋으면 된다는 태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도, 내 기준에서 만족하면 된다는 기준. 같은 듯 다른 선택. 그 안에는 아주 다르게 진화한 소비의 철학이 담겨 있다.
듀프 소비는 단지 돈을 아끼는 똑똑한 소비자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소비자들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엔 브랜드가 말해주는 가치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비교하고 따져보고 선택하는 시대다.
“왜 비싸야만 좋은 걸까?”
“진짜와 거의 비슷한데, 그 ‘거의’에 더블 가격을 내는 게 맞을까?”
듀프 소비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트렌드를 보며, 다음과 같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의 권위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을 스스로 비교할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것을 SNS로 검증받는다. 이제는 ‘로열티’보다 ‘리얼리티’가 강한 시대다. 소비는 ‘경제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다.
나는 이만큼 현명하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퍼포먼스. 쇼핑은 경험이자 자기표현이고, 듀프는 그 도구가 된다.
기업은 더 이상 독점적 권위자가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큐레이터여야 한다. 정품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경험할 기회를 더 열어줘야 한다. 룰루레몬처럼.
브랜드가 줄 수 있는 진짜 가치는 '물건'이 아니라 '이건 다르다'는 확신이다.
결국, 듀프 열풍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소비자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