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직장인의 리추얼
내가 맡고 있는 모바일 급식 서비스 앱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다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개인별 데이터가 아닌 사업장별 전체 통계였지만, 그 속에는 직장인들의 생존 본능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한국 직장인의 소울 푸드는 단연 '한식 국·탕·찌개'다. 그런데 요일별로 쪼개보면 재미있는 '변주'가 일어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월요일'이다. 유독 샐러드나 헬스팩의 이용률이 치솟는다. 주말 내내 기름진 배달 음식과 음주로 달렸던 몸에 대한 반성일까? 월요일 점심만큼은 "내 몸을 정화하겠다"는 비장한 '디톡스(Detox)' 심리가 데이터로 나타난다.
반면 '금요일'로 갈수록 식판은 가벼워진다. 든든한 밥 대신 국수(Noodle)나 샌드위치 같은 간편식을 선호한다. 이미 마음은 주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식사도 빠르고 가볍게 해결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 테다.
이 데이터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주일 단위로도 삶의 리듬을 조절하고 있구나. 월요일엔 몸을 챙기고, 금요일엔 마음을 챙기는 작은 의식(Ritual)들 말이다.
그렇다면 '1년'이라는 긴 호흡이 끝날 때는 어떨까? 일주일의 피로도 금요일 샌드위치로 달래는데, 1년의 고단함을 털어내기 위해선 훨씬 더 강력한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찬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스타벅스 프리퀀시 전쟁'은 바로 그 지점에서 행동경제학적 기제와 함께 작동하기 시작한다.
연말 리추얼의 대명사가 된 스타벅스 다이어리. 미션 음료 3잔을 포함해 17잔을 마셔야 하니, 대략 9만 원의 비용이 든다. 재미있는 점은 이 비합리적인 소비 게임의 주축이 구매력을 갖춘 3040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 결과 1020세대는 가성비 커피로 떠났지만, 3040은 여전히 9만 원을 쓰며 리워드에 집착한다. 도대체 왜일까? 여기에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몇 가지 행동경제학 원리가 숨어 있다.
대니얼 카네만(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이득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입는 고통을 2배 더 크게 느낀다.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한다.
프리퀀시 기간이 되면 우리는 동네의 맛있는 개인 카페를 외면하고 스타벅스로 향한다. 이를 '락인 효과(Lock-in Effect)'라 부르는데, 심리적 기제는 단순하다.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스티커 1개'를 적립받지 못하고, 뇌는 이것을 명백한 '손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커피 맛보다 '스티커를 못 받는 고통'을 피하는 것이 의사결정의 1순위가 된다.
1930년대 심리학자 클라크 헐(Clark Hull)은 미로 속의 쥐가 먹이에 가까워질수록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목표 가속화 효과(Goal Gradient Effect)'라 한다.
우리의 모습도 이 실험실의 쥐와 다르지 않다. 스티커 판이 10개쯤 채워지면(목표가 가시화되면) 이성은 마비된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빈칸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마신다. 여기에 이미 쓴 돈이 아까워 멈추지 못하는 '매몰 비용(Sunk Cost)의 오류'까지 더해지면, 결국 에스프레소 14잔을 한꺼번에 결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는 어떨까? 9만 원을 들여 다이어리를 얻는 '지연된 보상' 대신, 그들은 '가성비'와 '디지털 기록'을 선택했다.
첫째, 어드벤트 캘린더 (과정의 즐거움) 3040이 17잔을 다 채워야 보상을 받는다면, Z세대는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매일 하나씩 선물을 뜯어보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즐긴다. 마이크로 보상(Micro-reward)을 매일 챙기는 방식이다.
둘째, 데이터 결산 (자아의 전시) 물리적인 다이어리 대신 그들은 스마트폰 속 데이터를 캡처한다. 스포티파이의 '올해 많이 들은 음악', 배달의민족의 '먹어본 음식 수' 등. 행동경제학적으로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타인에게 전시함으로써 효용을 얻는 '신호 효과(Signaling Effect)'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3040의 다이어리든, MZ의 데이터 결산이든 본질은 같다.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의 캐서린 밀크 먼(Katherine Milkman) 교수가 주창한 '새로운 시작 효과(Fresh Start Effect)'를 누리기 위함이다.
인간은 생일, 새해, 월요일 같은 특정 시점을 '시간적 이정표(Temporal Landmark)'로 삼아 과거의 부정적인 자아와 분리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 동기부여가 극대화된다.
다사다난했던 1년을 버텨낸 우리에게 필요한 건 커피나 다이어리 그 자체가 아니다. 앱의 '수령 예약' 버튼이나, '연말 결산' 화면을 통해 "올해의 고생은 여기서 끝내고, 내년은 새롭게 시작하자"는 심리적 마침표를 찍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휴먼이라고 정의했다. 경제학 교과서만 본다면 9만 원짜리 다이어리는 명백히 비합리적인 소비다. 하지만 우리는 가격(Price)보다 내 마음의 만족(Feel)을 1순위로 두는 '필코노미(Feel-conomy)'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호모 이코노미쿠스(합리적 인간)'일 수 없다.
급식 데이터 속에서 월요일엔 샐러드로, 금요일엔 샌드위치로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직장인들의 모습처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효율이 아니라 '기분'이다.
그러니 연말만큼은 계산기를 내려놓고 '필코노미스트(Feel-conomist)'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리워드를 모아 얻은 다이어리든, 4천 원짜리 네 컷 사진이든 상관없다. 이 비용은 1년을 치열하게 버텨낸 나에게 주는 가장 확실한 '심리적 퇴직금'이자, 내년의 기분을 미리 사는 '행복한 선물'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제 마케팅 게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교양이라고.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점심시간에도 이런 '스탬프' 같은 설렘이 필요하다. 밥만 먹여주는 식당이 아니라, "오늘 점심엔 무슨 미션이 기다릴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곳. 그것이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필코노미'의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