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부터인가
말보다
침묵의 언어를 배웠다
녹슨 철다리 밑 강물은
물결보다는 무게를 비껴
침묵의 길을 택한다
새들은
바람에 맞서지 않고
가만히 날개 끝을 기울인다
옥상 위를 품는 비는
쇠못처럼 뿌리내린 먼지를 적시고
마른 창문 유리를 타고 흐르는
한 방울조차
침묵으로 가슴을 누른다
말을 멈추고
무거운 문을 닫는다
틈새에 남긴 작은 균열은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흘려보내는 통로
잡음을 붙잡고 날아오는 주파수는
오래된 라디오를 노크하고
가끔 불쑥 토해놓은 그리움은
금이 간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는 빛과 같았다
한때는 사랑도
눈물도
이름도
폭풍처럼 소리쳤으나
소리를 삼킨 마음은
가장 깊은 쪽으로
호흡을 천천히 흘린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한 송이 작은 꽃을 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