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이 맥주를 배반할 때

by 소향

낮이 퇴근을 마치면
해는 시린 잔으로 기울어진다

처음엔
금빛 마음 하나가 넘쳐흘렀고
서로의 입술보다
먼저 닿은 건 기대다

거품은 가장 먼저 웃는다
희망처럼, 예감처럼
너의 첫 시선처럼

그러다 가장 먼저
사라진다

웃음은 우리를
끝까지 데려가지 못했고
말의 온도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불꽃을 잃은 초침이
잔 안을 휘돌아 빠져나간 뒤에야
사랑은 발효가 아니라
발화였다는 걸 알게 된다

뜨겁지 않게 타오르는 것
속으로 조용히 식어가는 것
눈물처럼 부푼 거품은
입술 끝에서만 맴돌다 허공에 흩어진다

잔은 비었지만
무게는 남았다

마침내
거품이 맥주를 배반하던 순간
시간은
우리 둘 중
하나만 기억하기로 했다



작가메모:

누가 보면 술꾼으로 알 것 같네요.

그냥 맥주를 따르는 잔을 보며 시상을 떠올렸어요.

과음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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