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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28. 2021

봄, 그리고 무관심

봄 이야기

오랜만에 봄맞이 청소를 했다. 지난 겨우내 쌓였던 낙엽과 먼지들 그리고 매서운 한파에 세상과 작별을 고한 식물들의 뒷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겨울나기 위해 창고로 자리를 옮겼던 아이들도 어느새 봄 냄새를 맡았는지 싹이 웃자라기 시작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죽은 나뭇가지와 구석구석 쌓여있던 낙엽을 긁어내 쓰레기봉투에 담으니 50리터 두 개가 나왔다. 그만큼 속이 후련해진다.


게으른 주인보다 봄을 일찍 맞이한 아이들은 벌써 아름다운 꽃으로 세상에 밝음을 선사한다. 아직 춥겠지 싶은 마음에 좀 더 일찍 돌봐주지 못한 아이들이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환한 웃음을 준다.


테이블에 꽃을 올려놓고 정리를 하는 사이 어떻게 알았는지 꿀벌들이 하나 둘 날아든다. 가까운 곳에 양봉을 하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금방 찾아오는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이들이 겨우내 지내던 창고는 아마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사방이 꽉 막혀 있던 창고를 겨울 동안 화분을 보관할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한쪽 벽을 유리로 바꾸고 선반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닭장처럼 비좁고 숨쉬기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은 그저 가끔씩 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물을 주는 것으로 그저 자기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예민한 아이들은 죽기도 했고, 약한 잎들은 냉해를 입기도 했다. 다시 보지 못할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작년에 화단 한 귀퉁이에 튤립을 심었고, 한철 아름다운 꽃을 보고서는 구근을 캐서 잘 보관했었다. 


1월 중순이 지나서 화분에 흙을 넣고 구근들을 다시 심었다. 나무껍질로 흙위를 덮어주고 화단에 줄을 세워놓고는 비닐로 덮어줬던 아이들이 어느새 뾰족뾰족 새싹들이 자란다 싶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자라 꽃봉오리를 저리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찬바람 속에서도 비닐을 방패 삼아 꼼지락꼼지락 자신을 키워낸 튤립이 올해도 마음 따뜻한 봄바람을 전해 주고 있다.


성미 급한 아이들도 있다. 같은 날 심었던 아이들인데 조리도 빨리 꽃을 피워 노란 향기를 전해준다.


튤립은 사실 꽃이 피고 나면 크게 볼거리가 없다. 그래서 꽃이 질 때쯤 줄기를 잘라주고 뿌리는 캐내어 양파 주머니 같은데 넣어서 서늘한 곳에 건조를 시킨다. 그러고 나서 봄이 시작되기 전 다시 흙에 심어주면 그 사이 저렇게 자라나 다시 꽃을 피워준다.


튤립은 다른 꽃들에 비해 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짧은 것 같다. 꽃봉오리가 맺혔다 싶으면 어느새 꽃이 피고, 꽃을 보는가 싶으면 어느새 시들어간다. 


그럼에도 짧지만 화려한 꽃으로 마음에 깊이 각인이 되어 사람들이 튤립을 찾는가 보다.



이 아이는 1월에 장난 삼아 씨앗을 발아시킨 아보카도다. 


아보카도를 먹고 나서 골프공만 한 씨앗이 동글동글한 게 예쁘게 보여서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후가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식물이니 자라기는 하겠지 싶었다. 


마시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들고 왔던 테이크아웃 잔을 뚜껑을 뒤집어 놓고, 빨대 홈 위에까지 물을 채운 후 아보카도 씨앗을 올려놓았었다. 물이 줄어들면 물을 채워주기만 하기를 한 달을 한 것 같다.


씨앗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뿌리가 빨대 홈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뿌리가 자라고 난 후 화분에 옮겨 심었다. 


3월이 되면서 날씨가 따뜻해 지기에 밖으로 자리를 옮겨놓았더니 저리도 잘 자라고 있다. 아마도 꽃이나 열매를 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저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키워봐야겠다.


코로나 이후 골목을 걸을 일이 거의 없었다. 가급적 사람들과 접촉을 덜 하고 싶어 피해 다닌 이유도 있었다. 오늘 골목을 지나가야 할 일이 있어 걷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노랗게 빛을 발하고 있는 민들레 한 가족이었다. 포장된 골목이라 흙도 없는데 벽과 포장도로 사이의 작은 틈에서 저리도 튼튼하게 성장해서는 꽃을 활짝 피워 놓았다. 


척박한 곳에서 버티기도 쉽지 않을 공간임에도 담대하게 버티고 이겨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민들레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고, 많은 씨를 세상에 보내어 다음 세대를 준비할 것이다. 우리 삶이 고되고 힘들다 할 지라도 저런 틈에서 살아가야 하는 민들레의 삶을 본받아 힘을 내고 또 살아내야 함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화단도 정리하고, 분갈이가 필요한 아이들 몇은 분갈이도 해주고, 수형을 잡아줘야 하는 아이들은 또 나름의 손길을 나누어 주고, 물은 한꺼번에 몰아서 줘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봄비가 내렸다. 봄비는 내 마음을 이미 알고나 있는 듯 새로운 보금자리 위로 촉촉이 내려앉는다. 그 봄비로 인하여 아이들은 또 기분 좋은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그 자리에서 자신을 잘 성장시킬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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