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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Apr 14. 2021

장미, 몰라봐서 미안해

100일 스토리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늘 설렘이 있다. 여름에 자라는 새싹을 보는 것보다 먼지 풀풀 날리는 이른 봄 메마른 대지를 덮고 있는 낙엽을 뚫고 자라나는 새싹을 보면 왠지 뭉클한 마음마저 든다. 이른 봄, 따끈한 햇살을 등에 메고 화단에 낙엽과 죽은 야생화들을 정리하다가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새싹들을 보았다. 아직 바람이 데워지지도 않은 시베리아의 냉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뭇잎 아래 숨어있는 어린 새싹은 핏기를 머금은 듯 붉은 홍조를 띠기도 하고, 연약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연한 연두색으로 앙상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연약하게만 보이던 식물들은 아직 남아있는 한기를 몰아내는 바람이 불어올 때쯤 이들은 다시 짙은 녹색의 건강미를 과시하며 성큼 자라났다. 다시 봐도 이제는 꽃샘추위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모습이다.

작년 여름이 다가 올 무렵이었다. 집에 장미가 몇 그루 있었지만 더 많이 심고 싶다는 옆지기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사주마 대답을 하고 화원에 따라갔었다. 옆지기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장미 화분을 8개 골랐다.

"이렇게 계산해 주세요."

"이렇게 하시면 20만 원이네요."

"네? 뭐가 그리 비싸요?"

"이 아이들은 수입이라 몸값이 좀 나갑니다."

"그래도 그렇지, 작은 묘목인데 그렇게 비싼가요?"

"영국에서 물 건너온 아이들이라서.... "


나는 뒤통수를 맞았다. 크기라 봐야 한 뼘 정도고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져 있어 얼마 안 하겠다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은 화분 8개에 20만 원을 부른다. 옆지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래도 여기가 도매라 엄청 싸게 파는 거예요. 다른데 가면 훨씬 더 비싸요."하고 툭 내뱉는다. 사주겠다고 따라와서는 안된다고 차마 말은 못 하고 결국 값을 지불하고 묘목을 차에 싣는 사이에 옆지기는 또다시 토분을 몇 개 더 추가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비용이 지불됐지만 그만큼 내 차도 묵직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본 줄기는 성장이 멈추고 곁가지가 여름 동안 자라 꽃을 피운 모습

그렇게 집으로 이사를 온 장미 중 분홍색 꽃을 피우는 저 아이는 화분에서 그대로 여름을 보냈다. 화분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나름 꽃도 피고 키도 꽤 성장을 했다. 분갈이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넝쿨을 만드는 장미라 벽 쪽에 심기로 했다.


식물은 역시 땅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 땅에 심고 얼마 되지 않아 장미는 폭풍성장을 시작한다. 성장하다 잠시 쉬어가며 꽃을 피워 늦가을까지 꽃을 보여주는 기특함도 연출을 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서 이 아이가 얼마나 자랄까 기대가 됐다.

3월 잎이 나기 시작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형을 잡아주면서 쓰러지지 않도록 분재용 철사로 고정을 시켰다. 그렇게 정리만 하고 다른데 신경 쓰느라 방심하고 있던 사이 분홍 장미는 또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준비 하나보다. 굵은 줄기만 앙상해 보이던 장미가 어느새 가지들이 저리도 많이 생겨났는지, 벽이 장미의 잎에 가려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키가 벌써 2미터는 넘게 자랐다. 서서히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곧 꽃도 피워 올릴 것 같다.

블루베리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크기는 작아도 생각보다 많은 열매를 맺는다. 약도 치지 않은 채 시간을 채우면 까맣게 잘도 익어간다. 아이들은 오가며 익어가는 블루베리를 하나 둘 따먹는다. 마트에서 사 먹는 과일과는 기분부터가 다른 것 같다. 기다리며 따먹는 재미로 블루베리를 살피고 다닌다.


블루베리에도 종류가 여럿이 있다. 이름은 다 알 수 없지만 종류마다 열매의 크기와 맛이 다른다. 아이들은 굵은 열매를 맺는 블루베리를 선호한다. 훨씬 더 맛있다며 익기를 기다려 경쟁하듯 따먹는다. 블루베리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저 먹는 즐거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나는 딱 그 모습이다.


올해는 널뛰는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환경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블루베리 나무에는 아직 꽃이 덜 피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가 어쩌겠어.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만족해야지.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그게 최선인 것이다"라고 하셨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연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자연에 수긍하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지혜를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4월 중순이 되면서 둥글레 꽃도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아직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서도 꽃들은 무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바람결에 흔들이는 종모양의 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산사의 바람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에 마음마저 맑아지고, 평온해지는 것처럼 둥글레 꽃에서도 바람 따라 맑은 종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착각이다.


다소 그늘진 곳에 자라는 은방울꽃도 덩달아 준비를 하는 듯하다. 은방울 꽃은 작고 하얀 꽃이 은방울 모양으로 꽃이 핀다. 수줍은 듯 넓은 잎 뒤로 빼꼼히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작고 앙증맞은 꽃에서는 빨간 열매를 맺는다. 작년 가을에도 빨갛게 익은 은방울꽃이 맺은 열매를 볼 수 있었다. 올해도 변함없이 열정을 품은 빨간 열매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은방울 꽃

사람들은 대부분 활짝 핀 꽃만 본다. 나는 화단에 식물들을 키우면서 싹이 자라는 모습에서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시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본다. 식물의 일생을 살펴보면 작은 변화 속에서 보이는 생명의 신비와 변화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꽃이 주는 행복을 보고, 맺은 열매를 통하여 풍성함을 맛본다. 그러다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에서는 아쉬움과 쓸쓸함 경험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배우게 된다. 그렇기에 야생화의 삶은 함축된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들 삶도 그렇게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본다.

키 작던 작년 여름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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