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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Apr 19. 2021

미니 카페, 만들어 봤습니다

100일 스토리 - 번외

앞집이 사라졌다.

집주인은 타지에서 살고, 세를 사는 사람들이 몇 번 바뀌었다. 작년에는 세입자가 나갔는데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던 어느 날, 퇴근을 했더니 앞집이 사라지고 빈 공터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물어보니 집주인 아들이 집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어 카페를 한다는 소문이다. 가뜩이나 집 앞으로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아 복잡한데 카페까지 생기면 귀찮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주택이 헐리고 측량까지는 했는데 그 후로 진척이 없다. 여름에 사라진 건물이 겨울이 되도록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대로 남아있더니 해가 바뀌자 갑자기 바닥에 콘크리트 기초작업이 시작되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새로 짓는 건물주가 나타났다. 나를 보자마자 90도 폴더인사를 한다. 그런 인사는 처음이라 당황했다.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조폭인가! 일반인들이 저렇게 인사 안 하는데...'였다.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는 사이 그 사람은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건물 짓는 사람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제 공사 시작하셨네요?"

"네, 하던 일들 마무리하느라고 좀 늦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사해야죠 뭐."

"그러시군요. 몇 층 올리시나요?"

"2층으로 지을까 합니다. 1층에는 카페를 하고, 2층에는 주택을 지어서 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중장비를 계속할 거고, 아내가 카페를 맡아서 운영할 계획입니다."
"여보! 이리 와 봐. 여기 앞집 사시는 분이야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공사에 카페 준비에 많이 바쁘시겠어요?"

"네~, 처음 하는 거라 이것저것 알아보고 하느라 더 바쁜 것 같아요."


그렇게 앞집과 통성명을 하고는 또다시 여러 날이 지났다. 이제는 2층까지 뼈대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짓는 모양새가 샌드위치 패널이다. 그래도 카페니 예쁘게 꾸며서 운영을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 집이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조금은 있다. 그렇다고 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도 말도 안 된다. 옆지기는 벌써부터 앞집이 신경 쓰이나 보다.

"앞집 공사도 하는데 우리도 인테리어라도 새로 할까?"

"몇 년 안에 우리도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있는데 인테리어를 새로 하면 낭비 아닐까?"

"그건 그렇긴 하지.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이는데... "

"그냥 그런 비용 아껴서 나중에 집 지을 때 좀 더 투자하자고."

"뭔가 분위기라도 바꿔보고 싶은데..."

"그럼 분위기도 바꿀 겸 내가 작은 데크에 포인트 하나 만들어줄까?"

그 말이 실수가 되었다. 토요일 오전에 화분들 정리 좀 하고 잡초도 제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다. 오후가 되자 옆지기는 다시 내 옆구리를 찌르며 어제 만들어주겠다더니 언제 만들 거냐고 성화다.

뱉은 말이라 주워 담지도 못하고 알았노라 오늘 자재 주문해서 최대한 빨리 만들어주마 대답을 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 반이다. 가끔 이용하는 목재상에 전화를 걸어 자재를 주문했다.


코로나로 자재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자재값이 많이 올랐단다. 그래도 업자에게 일을 시키면 그 값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에 주문을 했다. 자그마치 30만 원이 들었다. '전 같으면 20만 원이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벌인 일 시작은 해야 했다.


보조도 없이 혼자서 치수 재고 재단을 했다. 집에 가지고 있는 장비라야 절단기와 드릴과 톱이 전부다. 90*90 각재에 38*38 각재로 사이를 띄워 피스로 고정을 시켰다. 글로 쓰니 무지 쉬운 듯 한 줄이면 표현이 되니 씁쓸하다. 간격을 맞추어서 고정시켜야 하는 작업이라 쉽지 않은데 말이다. 2시간 동안 재단하고 고정시키고 하는데 한쪽 벽만 완성이 됐다.

다음날 오전에 일이 있어 다녀와서는 점심때쯤 다시 작업을 했다. 두 시간 작업을 하니 나머지 한쪽 벽이 완성됐다. 이제 두 벽을 세우는 일이 남았다. 문제는 세워서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고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앙카피스를 박아 고정을 시켰다. 아래는 ㄱ자 철물로 고정을 시키고 자리를 잡으니 얼추 벽이 세워졌다.


혼자 작업을 하니 상부를 만들어 올릴 수 없어 각각의 나무를 사다리를 이용해 올려서 작업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기 힘들어 조수가 필요했다. 둘째 아이를 불렀다. 좋아하는 책 5권을 사주는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 둘째는 피스를 집어주는 단순노동으로 꽤나 이득을 얻었다. 총 7시간의 작업을 끝으로 작은 데크는 분위기를 바꿨다.

톱밥과 자재 남은 것을 정리하고 물청소를 했더니 제일 먼저 둘째가 자리를 잡는다.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자리를 차지하고는 비켜주지 않는다. 벌써 사춘기인지 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뭔가를 할 때면 나와서 얘기도 해주고 작지만 뭔가 도움(도움인지는 모르겠지만..)을 준다. 아들은 내가 이틀 동안 작업을 해도 나와보지도 않는다. 성격이 뒤바뀐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뭔가를 만들고 하는데 관심이 없는 아들이다.


이 작은 데크공간을 위해 내 주말을 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옆지기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공간이 완성되자 사진을 찍어 인별 그램에 올리고, 지인들에게 깨톡을 보내고 난리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어서도 마당을 서성인다. 작지만 변화가 기분이 좋은가 싶다. 내일은 근처에 사는 가장 친한 친구와 마당에서 커피 한잔 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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