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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Apr 22. 2021

꽃은 밤에 보아도 아름답다

100일 스토리

저녁 8시, 발레학원을 다니는 둘째의 귀가 시간이다. 어둠이 내린 마당 한 귀퉁이 테이블에 앉아 집에 돌아올 아이를 기다려 본다. 의자에 기대어 무심한 듯 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은 간 곳 없고 뿌옇게 흐려진 하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쉬움, 텅 빈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에 밀려오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년시절 이맘때면 평상에 앉아 쏟아지는 별들의 소곤대는 이야기들을 엿듣는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별들 사이로 지나가는 비행기의 불빛을 별이 이동하는 것으로 착각하던 동심이 있었다. 길게 꼬리 물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꼬리에 소원을 달아 보내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동화 속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는 텅 빈 밤하늘 먼지만 남은 혼탁한 세상에 동심도, 동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사진 :소향

마당에 환하게 불을 밝힌다. 학원차에서 내려 들어올 아이가 혹여나 걸려 넘어질까 싶은 마음이다. 불 밝힌 마당에는 밤에도 꽃들이 무성하다. 전구색 불빛에 반사된 꽃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닌 따뜻한 느낌의 꽃이 되었다.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밤에도 스스로 빛나는 모습이다. 역시나 우리가 바라보던 밤에 핀 꽃은 스치듯 지나친 건조한 눈 속에 머물던 꽃이었다. 환하게 밝은 밤에 보는 꽃을 자세히 바라본다. 오히려 낮에 활짝 핀 멋들어진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왠지 수줍은 듯 꽃봉오리를 살짝 움츠리고 하늘거리는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어둠에 순응한다.

사진 :소향

움츠린 모습에도 향기는 남아있다.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향을 퍼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내 생각을 가볍게 무시하고, 유혹할 대상이 없다고 생각되는 밤에도 꽃들은 여전히 자신을 가꾸며 자신의 향기를 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곁을 지나치는 순간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는 걸음을 멈춰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가만히 멈춰 선 채 향기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밤이 붙잡은 흙내음으로 한층 더 선명해진 향기는 또 다른 매력이다.

사진 :소향

어쩌면 우리는 촉박한 현실에 떠밀려 주변을 살필 여유조차 없었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분단위 시간으로 쪼개어 틀에 끼운 듯 살아가는 삶은 익숙한 주변 환경조차 여유로운 시선을 주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들 삶에 쉼표 하나 찍어준 사건이 어쩌면 코로나 19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재앙의 수준까지 치닫는 극단적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사진 :소향

20개의 파티 등에 불이 들어오면 마당은 온통 따뜻한 빛으로 가득하다. 2.5W의 작은 전구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렇게 밝은 빛을 낼 수 없다. 2.5W*20= 50W다. 20개의 전구가 모여 밝은 전구 하나 정도의 전기를 소모한다. 혼자가 아닌 협동의 힘이다. 둥굴레 꽃이 홀로 피어날 때와 군락으로 필 때가 다르게 보이 듯 이들 전구들도 혼자의 힘으로 내는 빛은 미미하다. 미미한 밝기들이 모여 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이것이 진정 협동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 :소향

아보카도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아보카도를 먹고 난 후 재미 삼아 씨를 발아시키면서 시작된 아보카도가 어느새 이만큼 자라났다. 우리나라가 아보카도를 키우기에 적당한 기후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반신반의로 시작된 출발이었다.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 자연 앞에서 내 지식은 그저 어쭙잖은 짧은 지식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순간이다.

사진 :소향

학원 차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둘째가 열린 대문으로 환하게 웃으며 뛰어들어온다. 운동하고 오는 날이면 늘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이다. 사진에서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저 아이도 아직은 힘없고 작은 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삶이다. 점차 자라날수록 환경은 바뀌고 어둠은 깊어질 것이다. 때로는 풍랑과 눈보라를 견뎌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튼튼한 뿌리와 단련된 줄기가 버텨준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힘이 생길 것이다. 부디 그런 건강한 아이로 성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깊어가는 밤, 이제 마당에는 불이 꺼질 것이다.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을 어둠이 꽃들을 둘러싸고, 저들의 밤을 지배할 것이다. 그래도 꽃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뽐내며 밝아올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꽃은 어둠을 탓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 꽃은 밤에 보아도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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