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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y 11. 2021

30촉,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침의 바지런함에 세월이 떠밀려 간다. 어쩌다 시계를 바라보는 순간이면, 초침만 바지런을 떨지 않아도 세월이 여유가 있을 것만 같다. 가끔은 초침을 부러뜨려 세월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무모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는 것이다.


시계 초침을 따라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다. 그 속에서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철부지 초등학생의 가슴에 아린 그리움을 남겨주신 선생님과 손바닥만 한 운동장 구석을 누비던 친구들의 총총걸음이 있다. 노을이 물들어가는 시간이면 까맣게 그을린 코 흘리게 얼굴로 집으로 향하던 아쉬운 발걸음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들녘의 어스름 녘에 높은 굴뚝을 타고 날아오르는 연기들의 행렬이 한가롭다.


어머니 등판을 하얗게 물들인 소금이 어둠에 미세한 빛을 더하는 시간이면 30촉 노랗게 물든 불빛이 마중을 한다. 지친 손 재촉하는 아궁이가 빨갛게 성내며 혀를 내미는 순간들과 반질거리는 손때 묻은 가마솥의 구수한 밥 내음이 거리를 배회하면, 한쪽에선 늘어진 울음으로 배고픔을 부르는 암소의 울음이 길게 애처로운 시간이다. 그럴 때면 우리들보다 먼저 모락모락 김이나는 뜨끈한 쇠죽을 구유에 담아 배고픔을 덜어냈다. 밤이 까맣게 익어서야 안방의 30촉 전구 아래 달그락거리는 배꼽의 풍성함이 자리한다. 부족한 듯 부족하지 않고 풍성한 듯 풍성하지 않은 30촉의 저녁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마음이 머문 자리는 풍성함도 빈약함도 아닌 추억이 머무는 자리다.

사람은 참 별나다. 뭔가를 줘도 미운 사람이 있고, 주는 것 없이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세상에 더없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마음을 살피고, 적절한 표현을 하고, 흩날리는 먼지와 같은 정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정이 쌓인다는 것은 존재의 소중함 보다 함께하는 나눔이 더욱 단단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유년의 배꼽친구들은, 세월에 기억이 좀먹어 사라질 지라도 다시 만나는 순간 더없이 반갑고 소중한 것은, 주고받는 나눔이 아닌 함께하는 공유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 쌓인 공유에 세월의 먼지가 덮여 보이지 않을지라도 마음이 머물러 쉬고 있기에 곰삭은 멋과 맛이 존재하는 것이다. 세월을 이기는 힘이 있는 것이다.


길어지는 하루의 끝자락에 5월이 익어간다. 늘어나는 하루의 끝자락이 아쉬워 2.5촉의 등불을 밝히는 계절이 아쉬운 시간이다. 잊었던 전원의 그리움이 살며시 싹이 터 자라나는 계절이다. 이렇게 자라난 싹이 성장하여 풍성해지면 이곳은 또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가 될 것이다. 이곳은 더불어 나누는 사람들과의 공간이 되고, 함께하는 공유의 시간이 되고, 머물러 사색하는 어쩌면 가장 친밀한 시공이 될지도 모른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머물던 자리에 식어버린 노란 테이블을 바라본다. 싸늘해지는 바람이 어둠을 몰고 올 시간이면, 가만히 일어나 따끈한 커피향 한 잔 내려 테이블로 나온다. 그리곤 조용히 사색에 잠겨본다. 이마에 늘어나는 밭이랑과 빛바래는 머리카락이 아쉬워지는 시간, 깊어가는 계절을 따라 30촉 전구 아래 마음이 머물다 간 그 빈자리가 그리워진다.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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