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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n 07. 2021

인간과 환경 그리고 변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삶

환경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BC 322)는 그의 저서 [정치학(Politics)]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정치인이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동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직접 확인된 사항은 아닌지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동물'이나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그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고 표현해도 무방 할 것 같다. 이런 인간의 상호작용은 그들만의 관습이나 규율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환경이 변함없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환경도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상호작용에 의해 새로운 환경으로 변해간다. 그러면 인간은 다시 그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어쩌면 똑바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나 살다 보니 바뀐 모습이 되어버리는 '뵈비우스의 띠'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환경이 바뀌니 잡초가 사랑을 받는다.


유년시절 들판에 피고 지는 꽃들은 그저 잡초에 불과했다. 꿩의비름, 노루오줌, 제비꽃, 매발톱꽃 등등 그 시절에는 들에 자라는 풀이고, 농사에 방해되는 없애버려야 하는 잡초로만 기억됐다. 화초로 가꾸는 꽃들은 소위 말하는 이름 있는 명품(?) 외에는 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월이 이만큼 지나고 세상이 바뀌니 잡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특이함으로 무장을 했다. 왜 나를 아름답게 봐주지 않느냐는 듯 당당하게 이름을 내 걸고 세상 속으로 찾아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토종의 잡초들이 피워내는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각인시켜 이제야 사람들 눈에 들기 시작한 것 같다.


환경이 바뀐 것이다. 그 바뀐 환경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키우고 인정하던 꽃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찾게 되고, 당당하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획일적이지 않은 개성 있는 독특한 꽃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토종의 야생화들이 점차 사랑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랑받는 꽃들도 어느 순간 또 외면받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환경이 바뀌니 잡초도 사랑받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의 변화는 또 다른 문화를 만든다.


집에 40년 가까이 된 감나무를 베어내고 화단을 만들어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5년 정도 된 듯하다. 감나무를 베어낼 때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단감나무 이만큼 키우기도 힘든데 왜 잘라내니껴~?"

"아이고~, 감나무 대신 풀을 심었네~!!"

"감나무 때문에 여름에 시원할 텐데, 이제 더워서 우짤라꼬~"

"그래도 꽃보다는 먹는 게 안나니껴?"

......

감나무가 사라지고 그렇게 말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슬그머니 '내가 감나무를 잘못 베어냈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다고 잘라낸 감나무가 다시 살아날 희망은 없기에 "네~, 이제 나무가 오래돼서 과일이 잘 안되네요." 하며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화단을 가꾸면서 이리저리 모양도 잡아보고 잘못되면 다시 손도 대보고 했다.

처음에는 손을 대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화초를 심어도 식물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해 죽이기 일수였다. 그렇게 몇 해를 거듭하는 동안 작은 변화가 생겼다. 화단에 심는 식물들은 월동을 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으로 구분을 하고, 월동하는 식물들은 또다시 계절별로 꽃이 피는 시기를 조절하면서 화단을 구성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사이 코로나라는 환경의 변수가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는 외부로 나가는 길목을 차단했고, 덕분에 집에서 보내야 할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을 새로 꾸미고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의 힐링을 얻는 듯했다. 그 분위기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여실이 보여주고 있다.'구해줘 홈즈', '건축 탐구-집',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집에 대한 관심이 화단으로 집중하게 되었고, 지금의 화단으로 변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이다.


코로나로 발이 묶이자 사람들은 실내가 아닌 외부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마당이 지인들의 아지트가 되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픈된 장소이면서 나름 꽃들도 볼 수 있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지도 않은 아주 적절한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찾아들더니 급기야 주택에 사는 지인들마저 하나 둘 자신들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화원에 방문을 하면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누가 다녀갔고, 누구네 집 정원이 핫하다는 이야기는 일상이 되었다. 환경의 변화는 그렇게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변화된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 코로나 백신이 공급되면서 집합 금지 제한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사람들도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새롭게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회귀하기에는 시간이 다소 많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와 싸워야 하는 상태에 있고, 변이 바이러스의 문제도 있다. 더구나 백신을 투약했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돌파 감염이 보도가 되는 것을 보더라도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움츠렸던 삶이 활력을 얻기에 충분한 분위기임에는 들림 없는 것 같다.


백신 접종으로 생활환경이 한결 편해진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조심해야 할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들 삶은 여전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코로나와 동거해야 할 기간 동안은 지금과 같은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환경이 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서 완벽한 면역능력이 생기기까지 우리는 무조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빨리 적응하고 익숙해지느냐에 따라 환경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적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경은 더욱 심하게 중독시킬 것이고, 적응하고 살아남을 확률은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은 정보의 왜곡(착시)을 가져오기도 한다.


같은 사물을 보고 있더라도 어떤 빛이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주광색 불빛에 반사되는 꽃색과 밝은 햇살 아래 바라보이는 꽃색이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은 보는 순간에는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어 두 사진을 같이 놓고 보는 순간 너무나 큰 차이를 발견했다. 심지어 주광색 불빛 아래 찍은 사진은 같은 색이라고 해도 믿음만큼 색의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밝은 햇살 아래 찍은 사진은 색이 현저히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아래 수국 사진을 보면 주광색 전등이나 밝은 햇살이나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실은 수국의 사진과 같이 큰 차이가 없는 정보의 동일성이 확보되지만, 때로는 왜곡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정보들이 기억 속에 저장된다. 기억된 정보들은 우리 일상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특정 사이트에 다시 접속할 때 보다 빠른 정보를 수신하기 위하여 저장해 놓은 쿠키를 불러와 화면에 표시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왜곡된 현상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착시현상인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발생되지는 않지만 전혀 발생하지 않는 일도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며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과 현상들 속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를 가리켜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가 영향을 받고 있는 환경 역시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변화한다. 환경의 변화는 생명체의 번성과 멸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도 한다. 사람도 생명체이기에 변화되는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가야 한다. 특히나 코로나 19와 같은 혼란스럽고 갑작스러운 질병에 의한 환경의 변화는 어쩌면 전쟁보다 더 위험한 위기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질병은 인류의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므로 질병을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가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정보의 왜곡과 불일치로 인한 시행착오가 발목 잡는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도 질병을 잘 극복해 나가고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방식대로 코로나 19 상황에 처한 환경을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듯이 말이다. 백신을 맞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변화된 관계의 형성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며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런 모습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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