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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l 05. 2021

아직 젊은데, 노안이라고요?

눈에 핏줄이 터졌다.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눈이 좀 이상해 보여서 이리저리 살폈다.

오른쪽 눈 흰자위 오른쪽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뭐지? 눈이 왜 이렇게 빨갛게 물들었지?'

'아~, 충혈된 게 아니잖아!!'

빨간 눈을 살펴보니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흰자위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처음 있는 일이라 순간 더럭 겁이 났다.

부리나케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염증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핏줄이 터지는 경우가 있음으로 혹시 모르니 안과를 내원하여 진료를 받아보라는 글들이 꽤나 검색되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거울로 상태를 살피니 터진 피가 더 심해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일단 출근하기로 했다.


7월 초, 분주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직원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반기 가결산 및 사업계획 진행에 대한 중간 보고를 받았다.

이미 예사상을 했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를 받았다.

보다 좋은 연말 결산자료를 위한 대책회의가 시급해 보였다.

직원들에게 대책과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하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책임자 회의가 소집됐다.

이사장의 소집은 늘 마음 졸여야 하고, 머릿속에 줄줄이 꿰고 있는 데이터들이 얼마나 정확히 소환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재빨리 가결산 자료를 다시 훑어보고는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사장이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설득을 하게 만드는 쉽지 않은 시각이다.

그렇게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두통이 찾아온다.

실핏줄이 터져 뻑뻑하던 눈은 이제 통증까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안과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왠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사진: Pixabay

아직 젊은데, 노안이라고요?


병원은 거의 대부분 오후 진료시간은 2시부터다.

조금 일찍 안과에 도착해서 접수를 했음에도 앞에 대기자가 몇 명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뉴스를 보고 있자니 진료가 시작되었다.

"소향님~!"

"네~"

"먼저 시력검사부터 하실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왼쪽 먼저 가려주세요. 오른쪽 시력부터 측정해 드릴게요."

시력측정을 하는데 왠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까지는 양안 모두 1.2가 나왔기 때문에 시력이 안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모니터를 집중해서 볼 경우 눈이 아파옴을 자주 느끼고, 눈에 피로감이 느낄 정도여서 시력이 나빠졌음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7, 4, 3, 안 보여요. 안 보여요."

"3, 6, 8, 안 보여요. 안 보여요."

"다 되셨고요. 시력은 양안 모두 0.9네요."

"네? 0.9 맞아요?"

"네. 뭐가 잘못됐나요?"

"아, 그건 아닌데요. 전에 잴 때는 1.2였는데 너무 떨어져서요."

"하하하, 네. 추가 검사 좀 할게요."

그렇게 두 가지 검사를 더 했고, 대기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이내 내 이름이 불려졌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이 양쪽 눈을 이리저리 검사한다.

그러더니 사진을 몇 컷 찍고 나서 컴퓨터에 진료기록을 했다.

사진 :Pixabay

"연세를 보더라도 몇 년 전부터 노안이 진행되셨을 것 같아요."

"네? 노안이라고요?"

"네, 40대 이상이면 노안이 시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가요?"

"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보고 계신 것 같아요."

"이 정도 시력이면 안경을 쓰셔도 되고 안 쓰셔도 되는 정도라 본인이 판단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으시고요, 다만 눈에 핏줄이 터진 것은 작은 혈관들이 눈에 많이 있는데, 그중 혈관벽이 얇아진 곳이 터진 현상입니다. 그러나 신경 쓸 만큼 이상 증상은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안구가 많이 건조하니까 필요하시면 인공눈물 처방해 드릴게요."

"네, 그럼 다른 이상은 없는 건가요?"

"그럼요."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핏줄 터진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흡수돼 사라진다고 하고, 다른 곳에 이상도 없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에 인공눈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뻑뻑하던 눈이 좀 더 환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기분 나쁜 얘기는 '노안'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어느새 내 나이가 이만큼 됐나 싶었다.


어쨌든, 오늘의 충격적인 키워드는 '노안'이다.

정말 나이를 이기는 건강은 없는 것이란 말인가?

이제 내리막길을 실감하는 오늘 하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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