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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n 24. 2021

감성과 감정 사이

해먹을 장만했다.

"아빠, 해먹 사주시면 안 돼요?"

"해먹? 갑자기?"

"네, 친구네 집에 해먹 있다고 하는데 엄청 좋데요."

"사는 건 좋은데 해먹을 설치할 장소가 마땅치 않는데?"

"요즘에 실내용도 있데요. 친구네는 실내용으로 샀다던데."

"그래? 생각 좀 해 보자."


딸에게는 해먹을 사주겠다는 확답은 하지 않았다.

난데없는 딸아이의 해먹 타령에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안에 해먹을 설치해 놓는 것은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것 같다.

'그냥 안된다고 말하고 치울까?'

'마당에 해먹 하나 설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하지.'

'마땅한 장소는? 홈카페를 포기하는 방법이 가장 좋지.'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인데?'

'해먹에 앉아도 여유는 누릴 수 있지.'


얼마나 쓰다가 싫증을 낼지 모르겠지만, 결국 해먹을 사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종류가 참 다양했다.

해먹들은 원색의 줄무늬 패턴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베이지색 해먹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후기까지 체크해가며 결재를 했다.

일반적으로 오전에 주문을 하면 다음날 대부분 택배가 도착한다.

그런데 목요일 주문했던 해먹이 금요일에 도착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사이트에 확인을 하니 택배사로 발송했다고 되어 있다.

최근 택배 사태로 지연되는가 보다 싶어 하루를 더 기다려 본다.

딸에게는 해먹이 토요일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진짜요? 우왕~!! 기부니가 좋아요!!"

"그렇게 좋아?"

"네, 그런데 어디에 설치할 거예요?"

"음... 홈카페 테이블을 옮기고 거기에 설치해줄게."

"이야~~ 정말이죠? 해먹,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마 오늘은 오겠지 뭐. 어제 안 왔으니까."


그렇게 딸이 기다던 해먹은 토요일도 오지 않았다.

다시 사이트에 확인했더니 여전히 발송 중이다.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하려고 업체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토요일이라 출근을 안 했나 하는 생각에 전화를 포기하면서 월요일까지 기다려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딸의 기대는 또 기다림이라는 시간으로 기분이 상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달래기만 할 뿐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드디어 월요일, 업체에서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택배회사에 송장번호를 조회하니 조회가 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송확인 부탁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한 참이 지나서야 물건이 배송 중이니 곧 도착한다는 대답이 왔다.

배송 조회에서 송장번호를 입력하고 확인을 했더니 또 조회가 안된다.

화면을 캡처해서 다시 문자를 보내고, 확인 안 되면 취소하겠다는 메시지도 추가했다.

업체의 대답은 여전히 없다.

그 와중에 나도 바쁜 일정이 생겨 월요일을 건너뛰었다.

화요일 출근 후 다시 송장번호를 확인했으나 여전히 조회되지 않는 번호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취소할 생각으로 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제부터 택배사에서 배송 중입니다. 현재 00입니다.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메시지를 받고 나서 다시 택배 조회를 하니 이번에는 조회가 됐다.

더구나 지역에 도착해 있다고 조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택배가 발송되면 송장번호로 택배의 위치가 인이 된다.

그러나 이번 택배는 송장번호로 수차례 조회해도 조회가 안됐다.

배송되는 날 업체의 문자를 받고 조회를 하니 우리 지역으로 뜨는 황당함을 경험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해먹을 배송받았다.

퇴근하니 딸은 학원에 가고 없었다.

기다릴 딸을 위해 재빨리 홈카페의 테이블을 옮기고 해먹을 설치했다.

설치하는 시간은 10여분 정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치를 마치고 해먹에 앉아 오늘 하루의 쉼표를 시작하려 자세를 취했다.

순간, 대문에서 딸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문쫌 열어주세요~~!"

"딸~! 왔어?"

재빨리 일어나 대문을 열는 순간, 딸은 인사도 없이 가방을 둘러멘 채로 해먹으로 달렸다.

그대로 해먹과 하나가 되어간다.

"가방 놓고, 옷 좀 갈아입고 나와서 놀던가 해야지~?"

"알았어요. 잠시만요. 이대로 쫌 있다 갈게요."

일어나라고 해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자세를 잡은 채 그저 좋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저리도 좋은데 진작 해줄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책을 두 권 들고는 부리나케 해먹으로 올라간다.

누구한테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아 모기향을 충분히 피워주었다.

책을 두 권 모두 읽은 딸은 해먹을 둘러 몸을 감싸고 쏙 들어간다.

그렇게 미동도 없이 조용하다.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은 끼어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파랗게 비치는 하늘은 감성을 더해준다.

딸은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감성을 충전했다.


해먹으로 감정이 상했지만, 해먹으로 감성이 충전되는 밤이다.

어쩌면 마음의 여유를 잃어 기다리지 못함으로 감정이 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결국 또 그렇게 하나를 배워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밤이다.


마당에 존재하는 홈카페는 이제 캠핑장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주택의 장점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닌 이런 것은 아닐까?

원하는 대로 언제든 바꿀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곳 말이다.

이것이 주택에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깊어가는 밤, 고요해지는 정적 속에 딸아이의 숨소리만 잔잔히 들려온다.

돌돌 말린 누에고치처럼 보이는 딸과 해먹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짓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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