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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n 19. 2021

6월, 목련이 피었다.

휴일 아침이지만 여유는 없다.

주말 아침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더워지는 날씨로 해가 뜨기 전에 화단에 물을 줘야 한다. 늦은 시간에 물을 주면 물방울이 돋보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식물이 타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단에 물을 주고 나면, 혹시 모를 손님이 찾아올까 모기향을 이곳저곳 피워놓는다. 그래도 가끔은 전투모기의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모기향의 방역 효과는 생각보다 괜찮다. 피워놓은 날과 피우지 않은 날의 차이는 모기들의 전투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요주의 지역인 홈카페와 다소 습한 화단 쪽에 모기향을 서너 개 피워놓았다.

홈카페(찍어 놓은 사진이 없어 지금 찍었음.)

기온 상승은 꽃들에게만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마당에 잡초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성큼성큼 생명을 불태워 틈새를 노린다. 종족번식의 사명 아래 잠깐의 방심은 그들에게는 희망의 찬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한 가지 일감이 생기게 된다. 쪼그려 앉아 살고자 하는 잡초들의 생명에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다가간다. 손이 스쳐지난 자리에는 어느새 수북이 쌓이는  잡초들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면 나는 모른 척 환하게 웃고 있는 수국만 바라본다.

잡초를 제거하고 잔디를 깎고 나니 뭔가 시원한 기분이다.

한참 동안 그렇게 잡초와 씨름을 하다 보면 아들 PT 받으러 가야 할 시간이다. 아들 PT 받는 시간 동안 나는 혼자 개인 운동을 한다. 내가 헬스장에 가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날이다. 그렇게 운동을 끝내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식사 후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으나 더위가 곁을 내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홈카페에 앉아 선풍기로 바람을 대신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스커피도 한 잔 내려 휴일의 여유를 누리는 시간이 된다.

수국


목련 잎 사이로 낯선 그림자가 나타났다.

무심코 바라본 목련의 푸르름에 이른 봄 잘라버린 나무줄기가 생각이 났다. 자르지 않았더라면 더 풍성한 모습으로 그늘을 만들어 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짙은 초록의 커다란 잎 사이로 하얀 뭔가가 눈에 띈다. '뭘까?' 하는 호기심에 살며시 다가갔다. 목표물에 가까워질수록 낯선 흰색의 정체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얗게 피어나는 꽃이다. 잎이 나기 전 목련이 하얗게 피는 모습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풍성한 목련 잎 사이로 목련꽃이 핀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풍경이다.

2020년 3월 21일 목련이 피기 시작한다.

커다란 목련나무를 자르게 된 사연이 있다. 워낙 크게 자라다 보니 나무가 옆집으로 가지를 뻗었고, 옆집 벽에 닿게 되자 옆집에서 잘라 달라고 부탁했다. 나무에 올라가 자르다 보니 나무 무게 때문에 나무가 갈라지면서 절반 이상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남아있는 줄기도 터진 쪽을 자르고 나니 가지가 몇 개 안 남았던 것이다. 그랬던 목련이 대견하게도 얼마 되지 않는 가지에 하얗게 꽃을 피웠었다. 풍성하던 목련꽃이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 짠했던 터라 더 기억에 많이 남았다.


6월, 목련꽃이 피었다.

그렇게 꽃을 피웠던 기억이 선명하기만 한데,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목련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나뭇잎 사이사이 곳곳에 흰 꽃봉오리들이 매달려 있다. 줄기가 잘리고 워낙에 많은 잎들이 달려있어 숨구멍도 없을 정도라 밖에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잎을 들춰 찾아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커다란 잎 사이로 하얗게 꽃봉오리가 솟아 올랐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이상기온으로 4월 중순 갑자기 덥다가 다시 추운 날씨가 이어졌기에 목련이 착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지난겨울 개나리가 꽃을 피웠다는 뉴스도 있었고, 이른 봄 개화기가 아닌데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어쩌면 목련도 그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이상현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련 꽃이 곳곳에 보인다.

6월, 목련꽃이 피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내가 더위를 먹었는지 아니면 목련이 더위를 먹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꽃은 피었다. 하얗게 피어나는 순백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은 왠지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사람들의 편리로 바뀌어버린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극지방의 빙하도 녹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고 하니 이러한 자연이상이 어쩌면 이상이 아닌 그들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높아지는 한낮의 기온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제 곧 여름이 오려나보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집으로 들어가 에어컨을 켤까 생각하다가 하얗게 피어나는 목련을 보고 참기로 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부채질한다.


잘하고 있다는 듯이...

사진 : 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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