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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Aug 08. 2021

해열제와 등갈비 구이

여름을 이기는 것

여름, 느티나무 그늘은 에어컨보다 좋았다.

연일 식을 줄 모르는 열기는 지속적인 체감온도를 올렸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열기를 품어 피하고 싶어지는 한 여름의 풍경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지구는 이제 여름만 되면 고열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몸살의 여파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힘든 시간이 되고 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잠시 에어컨 전원을 끄면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차 오른다. 더위를 바라보다 에어컨조차 없었던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 본다.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여름철 동네 사랑방이었다. 한낮의 기온이 높아질라 치면 느티나무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동네 이장님이 내놓은 수박 한 덩이면 그날은 마을 잔치가 되었다. 둘러앉은 자리에는 안부가 오가고, 근황이 오가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때로는 노인들의 장기판이 벌어지고, 지나던 나그네의 작은 훈수 한 마디에 언쟁이 오가기도 하는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장소였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느티나무 그늘은 부채 하나만으로도 여름을 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부채가 없다손 치더라도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흐르던 땀이 달아나는 시원함이 있었다. 어쩌면 에어컨 아래 앉아있는 요즘보다 느티나무 그늘이 훨씬 더 시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식을 줄 모르는 고열, 소나기 해열제가 처방되었다.

지난 금요일, 퇴근시간 차량에 찍힌 외부 온도는 41도다. 물론 차 안의 열기는 찜통 그 자체다. 사무실 시원한 에어컨 아래를 벗어난 순간 다시 근무하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순간이다. 꾹 참고 차를 몰아 집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소나기 예보는 있었지만 설마 비가 올까 싶은 마음에 무심하게 주차를 하고 짐을 챙겨 내리는 순간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갑자기 후두두둑 떨어진다. 재빨리 집으로 뛰어들어가 비설거지를 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는 잠깐 사이 마당에 물이 흐를 만큼의 비를 쏟아냈다. 소나기는 해열제가 처방된 것일까? 바람마저 뜨겁던 열기는 어느새 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열이 내린 듯하다.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토요일 오전은 참을만한 시간은 아닐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어제저녁 해열제 한 방이 가져다준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열대야로 밤에도 가동되던 에어컨이 멈췄고, 아침을 여는 공기도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달력을 보니 역시나 입추다. 드디어 가을이 시작되려나보다. 자연은 역시 어김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 :Pixabay

입추, 등갈비 구이를 했다.

잠시 방심을 했다. 다음 주를 보니 말복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해열제 한 방이 있었지만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돌아보니 지난 복날 우리 가족은 딱히 몸보신한 것 없이 지났다. 영양 과잉 시대라 생각되어 일부러 챙기지 않으니 식구들 모두 별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아들 녀석은 요즘 뱃살을 뺀다고 운동 중이라 식탐이 있어도 자제하는 중이다. 그래도 너무 안 먹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말복이 있지만, 이쯤에서 식구들 고기를 좀 먹여볼까 궁리를 한다. 옆지기와 마트 한 바퀴를 돌다 보니 등갈비가 보였다.


"삼겹살은 너무 기름지고, 오늘은 그냥 등갈비 구이나 해 먹을까?"

"나 요즘 디톡스 때문에 고기가 안 당기는데, 그래도 애들은 먹여야겠지?"

"당신하고 아들하고 요즘 너무 관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요즘 이상하게 안 당겨요."

"당신 안 먹어도 아들은 구워놓으면 많이 먹을걸."

"그래요. 이번엔 등갈비 구이 해줘요. 어차피 당신이 할 거니까."

"어느 순간부터 이런 거는 완전히 내 차지가 돼버렸네!!"

"당신이 잘하잖아요. 난 몰라."


그렇게 이번 주말 이벤트는 등갈비 구이가 당첨됐다. 등갈비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찜솥에 적당히 삶았다. 생고기로 구이를 하면 속까지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양념 때문에 고기가 타서 쓴맛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삶는다. 등갈비가 삶아지는 시간에 그릴에 숯을 피운다. 토치로 잠깐 불을 붙여 놓고 준비하는 시간이면 구이 하기 좋게 불이 붙는다. 등갈비가 삶아지면, 양념을 만들어 삶아진 등갈비에 골고루 바른다. 빨갛게 숯에 불이 붙은 그릴에 등갈비를 올려 불맛을 입히면 등갈비 구이는 완성된다.

내가 등갈비 구이를 완성하는 사이 옆지기는 저녁 준비를 끝냈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식구의 저녁 식탁은 그렇게 완성이 된다. 적절한 소스와 불맛이 어우러진 등갈비 구이를 한 입 베어 물고는 모두 엄지 척을 날린다. 늘 그렇듯 땀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난 후 식구들이 맛있어하는 표현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쩌면 준비하는 과정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을 짧은 칭찬이다. 그럼에도 그 짧은 순간의 표현이 흘린 땀을 보상해 주는 것 같아 기분 좋은 순간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런 기쁨도 알 수 없으니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오늘 저녁은 길게 이어지는 저녁시간이 뿌듯해진다. 내일이면 아마도 복날 먹을 음식을 찾고 있을지도 모를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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