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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Dec 21. 2021

기억에 대한 소고

어쩌다 생각

무언가에 쫓기듯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간이 밉기만 하다.

하루 일과가 냉정하게 시간을 지배하는 날들, 최소한의 움직임 사이를 어찌 그리도 잘 알고 있는지 그 작은 틈으로 휴대폰마저 자신의 존재를 들이댔다. 어찌 보면 그냥 바쁘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핑계일 수 있을 일들이 하루의 빈틈을 메워갔던 것이다. 그럴 때면 몰려오는 잠조차 외면당하기 일수였고, 태양은 그저 무심히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바쁘다는 것은 하루를 그만큼 잘게 조각내어 빈틈없이 채워진 퍼즐로 꿰어 맞추듯 채워나가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지나올 때면 아무런 생각이 없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뭔가에 홀린 듯 움직이게 된다. 요 며칠이 그랬다. 매 순간 분명히 바쁘지 않았음에도 바빴다. 바빴음에도 가시적인 성과도 없이 공허했다.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저 뒤통수를 뭔가에 세게 한 방 맞은 듯 멍하기만 한 순간이다. 


분명하게도 시간은 어느새 일주일을 지워버렸다. 지워진 시간 속에 때로는 기억조차 잃어버린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사진이라도 찍은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퍼즐의 조각처럼 끼워 맞추려고 하면 모양이 달라 내려놓아야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퍼즐 맞추는 딱 그런 모습이다. 그러니 흩어진 조각들은 정리가 되지 못하고 산만한 모습으로 머릿속을 시끄럽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퍼즐이라는 생각에 사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사진도 아주 작은 화소로 구성된 퍼즐과도 같으니까.


우리 삶은 어쩌면 사진의 화소는 아닐까? 매 순간, 매 시간, 매일, 매년 그렇게 화소가 늘어가는 사이에 삶이 자라고 있다. 화면이 커진 만큼 작은 화소들은 시야에서 점점 작아져 미세한 흔적으로 표현될 것이니 우리의 매 순간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고해상도의 사진에는 수많은 화소들이 하나의 사진을 완성한다. 그 속에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작은 화소들도 분명히 있다. 우리 눈에 보일 만큼 여러 개의 화소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은 화소 하나라고 무시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왜냐면 그 작은 화소가 가지고 있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화소들의 존재가 부정된다면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왜곡되는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 부자연스럽고 매끄럽지 못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 삶도 매 순간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몫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 되더라도 우리가 품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삶을 연결해 주는 아.교.와도 같은 존재일 것이니까.


오랜만에 빛바랜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매일 마주하던 햇살인 듯 하지만 요 며칠 흐리고 눅눅한 날들이 이어지니 반가운 마음이 생긴다. 저 햇살도 기억 속 화소의 한 부분이 된다. 봄날 아지랑이 피워내며 식물들의 발아를 자각하던 시간과 타는 목마름으로 견뎌야 했던 여름날의 힘겨움, 그리고 누그러진 마음으로 달래며 겨울을 준비하게 했던 가을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날 선 겨울의 횡포에 내편 들어주는 반가움이 있다. 계절의 변화라 무심히 넘길 수 있겠지만 기억 속에 저장된 작은 의미들은 여전히 작은 화소로 남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 우리는 존재한다. 매번 느끼는 것은 시간 앞에 우리는 나약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권력을 손에 쥔 사람도 시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계를 절감하며 무너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시간을 거스를 힘이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조건도, 상황도 모두 시간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그것은 우리들 기억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전하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러나 전하는 기억이라는 것이 전달되는 순간 변형이 된다. 내 기억 본연의 모습으로 전달되지 않고 수용하는 사람의 기억에 반응하여 변형되는 것이다. 소문이 그렇고, 전래동화가 그렇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명확히 문자화 된 역사조차도 그 해석이 다른 이유다. 그렇게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머릿속 기억은 어떨까? 처음에는 선명한 기억이 유지된다. 그러나 역시 시간 앞에서는 내 머릿속 기억도 변형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합리화를 꾀하는 사람의 이기심일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기억을 가공하기도 하고 왜곡시키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기억은 우리들 삶에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런 기억들이 사진의 화소처럼 구분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변형되거나 지워지기도 하며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그중에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지워지는 기억, 망각이다. 삶의 힘든 여정을 모두 기억한다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망각한다는 것은 새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잊어버린다는 것도 우리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기억은 우리 삶의 전부일 수 있기도 하겠다. 


차가운 날씨가 어느새 물러갔다. 따스함에 언제 그랬냐는 듯 패딩을 벗어던지고 있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순간, 지금이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인 듯 기억을 되짚어본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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