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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Dec 14. 2021

강변과 데이트를 했다.

오랜만에, 더구나 추운 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시린 강변과 데이트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설렘은 찰랑이는 눈빛으로 다가왔고,

어쩌다 마주하는 바람의 시샘하는 눈빛은 눈물 나게 차갑기만 했다. 순간, 저만치 보이는 내 차가 춥다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돌발적인 순간의 갈등이 찾아왔다. 더구나 얇은 운동복에 바람막이 점퍼 하나를 걸쳤으니 그 유혹은 강렬한 자극이었다.


그때 남녀 두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다운점퍼를 입고, 모자와 장갑 그리고 목도리까지 누가 봐도 운동하러 나온 사람의 복장은 아닌 그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온 모습이다. 두 사람은 그냥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듯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였고, 따뜻한 다운점퍼도 없이 그저 얇은 운동복에 바람막이 점퍼도 속이 비칠 듯 얇았다. 바람은 막아줄지 몰라도 냉기는 전혀 막지 못하고 있었다. 날씨보다도 그런 상황이 더 추웠다.


너무도 오랜만에 강변으로 나왔더니 감을 잃었나 보다. 그래도 보온이라도 되는 옷을 입고 나올걸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래도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다. 어차피 영하 10도는 아니니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강물을 바라본다. 도시의 불빛들을 고스란히 복사해 놓은 채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찰랑이는 물결들이 박수를 치는 관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훅 밀고 들어온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대로 머물다가는 감기 걸리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달리기로 한다. 오랜만이고 날도 추우니 오늘은 5Km 정도만 뛰어야지 생각했다.

워치 기록

이어폰을 끼고 음악과 달리기 모드를 켰다. 음악을 켠 것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헬스 모드를 켠 것은 구간별 내가 달리는 속도와 심박수를 체크해주기 때문이다. 워치에서 스타트가 카운트됐고 나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운동하는 이유도 있지만 차가운 날씨에 몸이 풀리지 않은 탓에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 뛴 거 같은데 아직 1km 구간 안내가 없다. 워치를 확인하니 오류로  거리가 카운트되지 않았고 덩달아 걸음수도 누락됐다. 서둘러 설정하고 다시 뛰었다. 여전히 차가운 공기는 옷을 뚫고 들어와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발목이 뻣뻣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동안 운동을 안 했다고 이렇게 말을 안 듣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푸르던 강변은 어느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겨울이었다. 저녁이면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던 강변은 어쩌다 한 두 명씩 오가는 외로운 공간이 되었고, 화려하게 수놓았던 핑크 뮬리도 보랏빛 색을 내려놓은 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추위는 역시 움츠러드는 계절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추위가 없이 평온한 계절만 계속된다면 저 한해살이 식물들은 저렇게도 많은 씨를 맺을 필요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수명이 있음에 진화도 하고 변하는 환경에 적응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태어나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은 다 이유가 있고, 사연이 생기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운동할 때 뛰던 거리

3km 정도를 뛰고 나니 몸이 풀리는 것 같다. 몸에 땀도 나고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좀 더 뛰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운동을 하면 보통 8km 정도를 뛰고 마무리로 2km 정도를 걸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10km까지 뛰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랬다. 


월영교 입구 반환점에 접어드니 주차장에 가득 차 있는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찾아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월영교를 걷는 사람보다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에 들어갔을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움직여야 경제가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는 경제활성화에 주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활성을 위해 코로나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이런 시국이 답답하기만 하다.


반환점을 찍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제는 가야 할 거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생각에 기분마저 좋아진다. 마스크 덕분에 호흡은 무척이나 거칠어져 있다. 사람들이 없는 구간에서는 살짝 마스크를 내리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마스크를 쓰고 뛰려고 노력하다. 그리고 가급적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로 구성된 거리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갈수록 다리는 무거워지고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유혹한다. 그래도 '조금만 더'를 되뇌며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8km를 뛰었다. 오늘도 해냈다는 기쁨으로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1km를 더 걸었다.

오늘 기록

운동을 마치고 차에 앉아 워치를 확인했더니 이상하다. 거리는 9.7km인데 걸음수는 1만 보 살짝 넘겼을 뿐이다. 아무래도 오류가 있기는 한 것 같다. 아니면 오늘 보폭이 좀 넓었던 것일까? 아무튼 차가운 날씨지만 이렇게 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오래간만에 땀도 충분히 흘린 것 같아 기분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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