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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Dec 09. 2021

쭈그리를 말하다.

한 번 생각해 보기

아침 6시 30분.

눈을 뜨는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루틴의 시작이다. 어쩌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살아가기 위한 하루의 발악이 강제되는 시간이다. 눈을 뜨는 순간 이미 빡빡한 하루가 속보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서둘러하는 출근 준비는 늘 마음만 급하고, 눈에 거슬리는 현실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입으려고 준비해 놓았던 옷이 단추가 떨어져 버린다든지, 다른 옷을 찾았는데 딱히 맞는 옷이 없다든지, 닦아놓은 구두가 밟혀 더러워졌다든지 하는 일련의 소소한 일상이 거슬리기 시작하면 덩달아 짜증도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기분 좋게 출근해도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면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의 하루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출근하기 전부터 짜증이 튀어나오는 날은 그야말로 정말 최악의 하루가 예정되기 일수다.


여유로운 출근을 하고 싶었다. 여유롭지 못함은 짜증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일어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부족한 수면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알람을 꺼놓고 잠들어버리기 일수다. 일찍 자고 좀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하면 된다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잠자는 시간도 루틴인 듯 정해져 일찍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늘 부족한 것이 수면이고, 늘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그러니 현실은 여유보다는 정해진 출근시간에 회사에 도착하기 조차 빠듯한 분초의 삶이 된다.


가끔 여유가 생기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또 여유를 즐긴답시고 늦장을 부리다가 또다시 전날과 똑같은 촉박한 시간과 싸우게 된다. 오래전 일이다. 10여분의 여유가 있다고 출근길에 화단을 둘러본 적이 있다. 없던 진딧물이 갑자기 식물에 가득 매달려 있었다. 늘 준비되어있는 살충제를 뿌려놓고 가면 되니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살충제를 들고 분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분무기가 말성이다. 약이 분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깐 손봐서 마저 뿌리고 가야지 하고 서둘러 본다. 그런데 꼭 이런 순간에는 시간이 축지법을 쓰는지 10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분무를 마치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10분이 초과되었다. 

사진 :Pixabay

여유 있는 아침에 지각을 했다. 지각이라 생각하니 차도 더 막힌다. 출근하자마자 직장상사에게 들을 잔소리들이 이미 귓속으로 날아들어오는 것 같다. 덩달아 짜증이 밀려온다. 이런 날에는 끼어드는 차들도 많다. 괜히 경적을 울리고 혼자 짜증을 내봐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풀이를 하듯 그렇게 신경을 날 세워 반응하다 보면 때로는 다른 차와 시비가 붙기도 하고, 끼어들기를 막으려다 접촉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잠깐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켜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어가게 된다. 


'나는 재벌 2세가 꿈인데 우리 아버지가 일을 안 해요.'라고 했던 문구가 떠오른다. 재벌 2세면 출근 전쟁에 합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으면 회사 앞에 집을 사던, 짓던 살면 그만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쩔 수 없이 타의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이런 삶들이 어쩌면 쭈그리의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사는 모습이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으로 몰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 삶은 왜 쭈그리가 되었을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쭈그리의 삶을 살았던 것일까? 처음부터 쭈그리의 삶이었다면 벗어날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는 쭈그리의 삶이다. 태어나는 순간은 누구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말 그대로 빈손이었다. 그런데 태어나고 보니 누구는 부잣집이었고, 누구는 평범한 집이었고, 누구는 가난한 집이었다. 그 순간 우리들 삶은 소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인생이 갈렸다. 살기 싫다고 안 살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이 악물고 버티며 그렇게 살아간다.

사진 :Pixabay

더 좋은 삶,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부단히 도 노력한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다. 학생의 신분에서도 금수저의 삶은 족집게 과외로 더 쉽게 좋은 성적을 받고, 양질의 교육으로 더 자연스러운 누림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간다. 흙수저의 삶은 낮에는 분초를 다퉈가며 일을 했고, 밤을 새워 공부를 해야 그나마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양질의 교육보다는 당장의 생활을 위해 필드를 누벼야 하는 사회를 경험한다. 그런 사황이다 보니 전투력은 좋은데 소위 말하는 스펙은 딸린다. 


차별된 시작은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한다. 좋은 백(?)을 짊어지고 더 좋은 능력과 더 좋은 정보, 더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앞세운 금수저들은 취업에도, 소득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들은 그들만의 그룹을 만들어 자신들의 특권을 언제까지 누리고 싶어 한다. 흙수저 들은 제한된 정보와 능력으로 차단된 네트워크 아래서 허덕이는 삶에 노출될 수 밖에는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쭈그리들은 늘 눈치를 보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기회를 살피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을 벗어나기 쉬운가? 그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요즘 사회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실감 난다. 신분상승의 기회는 갈수록 힘들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고 한다. 어느 방송에서 로스쿨의 한 해 등록금이 1,400여만 원이 든다는 말이 오가는 것을 봤다. 확인해 봤더니 비싼 곳은 학기당 1,000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서민이 그 돈을 감당하며 로스쿨을 다닐 수 있을까? 로스쿨만 그럴까? 그렇다면 의대는 얼마나 들까 싶어 검색을 했다. 1위가 1,289만 원 정도고 가장 저렴한 학교가 560만 원 정도다. 등록금만 그런 상황이니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아닌 듯싶다. 그만큼 계층 간의 벽은 이미 철벽으로 바뀌고 있는 형국이다.

사진 :Pixabay

불합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부자들은 '돈이 돈을 벌게 하라.'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람이 돈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돈이 돈을 벌게 되면 놀고 있어도, 자고 있어도 내 재산은 불어나게 된다. 결국 일을 안 해도 돈을 벌게 된다. 이런 구조가 형성되면 돈을 쓰고 다녀도 쓰는 것보다 더 많이 벌리는 형국이 된다. 이것이 현재 부자들이 놀면서도 더 부자가 되는 이유다. 억울하면 돈 벌라고 한다. 그러나 돈 없는 사람이 돈을 모아봐야 부자들 눈에는 그저 푼돈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푼돈으로 그들을 따라갈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문제인 것이다. 그런 고리를 끊는 것이 쭈그리들이 가슴 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부의 재분배는 오랜 숙제 중 하나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고민을 했음에도 아직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가 바로 부의 재분배 문제다. 개인적으로 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하는 부자들과 정치인들이라 생각한다. 법과 제도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부자들은 그 법을 피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수많은 법조인들을 고용해서 법을 피해 갈 방법을 연구하고 법을 자신들 안으로 끌어들인다. 정치인들은 그런 부자들의 눈치를 본다. 그러니 법을 바꾸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워진다. 부와 정치가 결탁을 하게 되니 부의 재분배를 달성하기가 더욱 어려운 이유가 되는 것이다.


권력의 재분배가 부를 재분배할 수 있을까? 부와 권력이 친한 것이 부의 재분배를 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면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갈라놓는다는 생각 자체도 사실 쉽지 않은 방법이다. 권력의 핵심에는 늘 부자들이 소위 말하는 줄이라는 것을 대 놓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눈치를 보게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볼 때는 권력을 재분배해서 부와 권력이 결탁하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이 부의 재분배를 달성하는 지름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 :Pixabay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권력의 재분배가 달성된다고 해서 방치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권력은 매서운 눈으로 감시를 해야 한다. 그 중심이 서민들이어야 하고, 부와의 결탁이 발견되는 즉시 탄핵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권력은 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어쩌다 실수로 라는 말이 허용되면 그것은 반복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권력은 작은 실수조차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감시와 통제가 되지 않으면 권력은 다시 부와 결탁하게 될 것이고, 가난이 대물림되기를 원하는 그들에 의해 조종당해 타의적 쭈그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쭈글이지만 내일은 당당한 삶이고 싶다. 타의적인 대물림되는 쭈글이는 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찾아야 할 것이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준비 없이는 권력을 재분배할 기회가 와도, 쭈그리를 벗어날 기회를 줘도 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민함과 생각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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