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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Nov 24. 2021

가을 단풍은 그렇게 울었다.

유년의 가을을 기억하며

올봄, 마당에 자라던 목련을 키만큼 남기고 모두 잘라냈었다. 옆집에서 가지가 넘어온다며 정리해 달라는 말이 있었기에 자르는 김에 왕창 잘랐던 것이다. 그랬더니 목련이 1년도 안돼서 기존에 있던 높이만큼 자라났다. 뜬금없이 여름에 꽃을 피웠고, 잎은 플라타너스 잎처럼 크고 두꺼워졌다. 


지난 토요일 찬바람을 막으려 데크를 비닐로 두르다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뭔가 싶어 확인하니 목련 잎이 무거워 떨어지는 소리도 요란하게 들렸던 것이다. 시린 바람이 불어왔다. 하나 둘 떨어지는 목련 잎의 추락을 들으며 유년의 가을이 떠올랐다. 

이미지 :Pixabay

나는 가을이 싫었다. 


아니 가을이 싫었다기보다는 가을 그 뒤안길의 쓸쓸함이 너무도 힘겨운 날들이었다. 늦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풍성한 들녘이 허전해질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전함이 있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슬펐고, 앙상해지는 가지들이 그렇게 슬퍼 보였다. 마치 장마 지던 여름날 훌쩍 떠나버렸던 아버지의 빈자리도 저렇게 한 순간에 발생했던 허무함이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가을,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방문을 예고하는 들녘에는 시간을 다투는 추수가 한창이었다. 고추를 베어 한 곳에 쌓아 서리에 대비했고, 무나 배추같이 김장을 해야 하는 채소들은 한 곳에 모아 얼지 않도록 덮었으며, 감자는 깊은 구덩이를 파내어 저장고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안팎의 일을 모두 해야 하는 어머니는 늘 시간에 쫓기었다. 어머니의 눈길과 손길이 고픈 나는 바삐 움직이는 어머니의 그림자만 바라보다 심심함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곤 텅 빈 집 한 귀퉁이에서 그런 들녘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때로는 심심함과 때로는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이미지 :Pixabay

마음이 쓸쓸해질 때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했기에 제일 만만한 개울로 달려갔다. 물속에 있는 돌을 들춰내면 개구리도 보이고 가재도 보인다. 나는 개구리보다 가재가 재미있었다. 가재는 평상시에 앞으로 기어 다닌다. 그러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꼬리 쪽으로 냅다 달아나곤 한다. 그 모습은 너무도 신기했다. 거의 모든 동물들은 잘 보이는 앞으로 달아난다. 그런데 가재는 뒤로 줄행랑을 치는 것이었다. 가재는 뒤에도 눈이 달려있어 앞으로 가는 것보다 몇 배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일까? 궁금함에 가재를 들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앞에만 눈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개울에서 놀다 보면 가끔 단풍나무의 멋들어진 가을이 보인다. 밑동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물든 가을이 어쩜 그렇게 다른지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아래쪽은 어두운 빨간색이라면 꼭대기에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색의 조합이 너무나 예뻐 잎을 색깔별로 따서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책갈피에 꽃아 잘 말리면 작은 형이 그곳에 시를 적어주기도 했었다.


가을 단풍은 그렇게 울었다


늦가을은 항상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기억이 난다. 잎이 말라 톡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을 더욱 시리게 했다. 개울에서 놀던 나는 시린 바람이 싫어 햇살 따끈하게 데워놓은 바위에 눕는다. 바람은 개울을 훑고 지나쳐 산골짜기를 달린다. 산골짜기를 따라 치솟던 바람은 간신히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을 모두 몰고 하늘로 올라갔다. 바람의 날갯짓으로 유영하던 잎새들은 이내 힘을 잃고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다. 마치 가을이 흘리는 눈물처럼 그렇게 쏟아내고 있었다.

이미지 :Pixabay

그렇게 한동안 쏟아낸 눈물 뒤에는 헐벗은 가을이 처량했다. 날씨도 추운데 앙상하기까지 한 나무들을 보면 더 추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겨울 문턱을 넘는 시린 바람이 목련을 흔들어 댄다. 깊어가는 가을 떨어지는 낙엽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가을은 유년의 가을보다는 쓸쓸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나름의 가을을 즐기고 있다. 


유년의 가을은 가슴 깊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자라나는 쓸쓸함이 사무쳤다.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가슴을 대신해 가을 단풍은 아마도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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