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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Nov 30. 2021

11월을 보내며

일상, 그리고 감사

11월이 눈물로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출근하는 도로 위에는 꼬리를 무는 개미의 행렬처럼 자동차들이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체온을 잃어버린 기계의 정형화된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반면 횡단보도를 재촉하는 종종걸음은 시간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우산은 가쁜 호흡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지각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지만 시간을 당기고 싶은 마음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겨울비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장을 하면 감사하게도 매번 잊지 않고 한 통을 담아 건넨다. "다른 사람은 괜찮다고 하는데 지점장님 입에는 어떨지 몰라요. 그냥 드셔 보세요."라며 무심한 듯 건네는 손에는 따스함이 묻어있다. 감사함에 어른이 추수한 들깨로 짠 기름 한 병을 건넸다. 어른의 손길이 묻어있는 들기름은 늘 아끼는 것이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호대기를 핑계로 문자를 보냈다.

'김치 정말 맛있어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겨울비 속에서도 바쁘시겠지만 행복한 하루 되세요.'

보내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그저 무미건조한 상투적인 문자인 듯하여 괜히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미소를 담아 답장을 주신다. '겨울비, 참 예쁜 말이네요.'라며

이미지 :Pixabay

11월 가결산으로 바쁠 예정이었지만 이상하게 한가한 시간이다. '겨울비' 때문인가 하는 마음에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브런치를 열었다. 사무실에서의 글쓰기는 참 묘한 기분이다. 왠지 노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이럴 여유가 있나 싶기도 하고,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글은 집에서 마음 편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조용히 업무 하는 척 글을 써 본다.


사실 내가 주로 쓰는 글은 시다. 시를 써온 기간이 어느새 1년 하고도 반이나 지나간다. 그럼에도 내가 왜 시를 쓰는지에 대해서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짧은 글 이기에 쉽게 쓸 수 있겠지 하는 말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말일 것이다. 나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에세이를 쓰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사전을 찾기도 한다. 그런 수고를 감수하고 시를 쓰는 이유를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시를 발행했다. 일상과 생각과 추억으로 글을 빚는다. 나름의 고민과 시간과 짧은 지식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럴 때마다 이런 글을 발행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용기 내어 발행하는 이유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무한한 응원이 한몫한다. 때로는 듣기 좋으라는 말일 테지만 시집을 내놓으라고 하시는 작가님도 계시다. 부족해도 좋다고 해 주시는 이런 작가님들의 선한 마음에 너무도 감사하다. 나에게 있어 언제 어디에서든지 생각 날 참 소중한 동행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미지 :Pixabay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짙은 커피 향이 내리는 빗소리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이대로 11월이 멈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글에는 다 표현하지 못할 많은 감사들이 11월을 채웠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은 것은 감사함이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표현한다고 크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작은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다 감사하다.


사무실은 여전히 분주하다. 사람들이 필요를 만들고, 편리를 찾고, 서류들이 자리를 찾아가고, 복사를 부르고, 뉴스가 전화벨을 키우기도 줄이기도 하는 알 수 없는 하루들의 연속이다. 짜여진 각본이 없는데도 톱니바퀴처럼 잘만 돌아가는 알 수 없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그런 분주함 속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마음으로 생각들을 선별해 본다. 부족한 습작의 씨를 뿌려본다. 응원에 보답을 생각해 본다. 감사하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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