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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Dec 02. 2021

물소리

계절을 닮다

생각이 추위를 몰고 오는 계절이다. 찬바람이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나가면 피부에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돌기가 화를 냈고, 사시나무 떨듯 흔들어대는 몸은 아마도 이 계절만이 가지는 추임새 일 것이다. 싸늘해진 집안 공기를 느끼며 달려간 보일러 앞에서 유년의 따끈했던 아랫목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아랫목에는 두꺼운 이불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추운 바깥을 다녀올 때면 따뜻한 아랫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책 두어 권을 준비해 놓고 아랫목에 엎드려 읽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어쩌다 책을 읽다 엎드린 채로 잠이 들면 꿈속에는 읽던 책이 드라마처럼 현실이 되었다. 이래저래 나쁠 것 없는 아랫목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계절은 나름의 행복을 가져다주곤 한다.

이미지:Pixabay

계절을 생각하다 보니 물소리가 생각난다. 자연이 친구가 돼 주던 유년의 날들에는 늘 물이 가까이 있었다. 그렇게 계절마다 물소리와 같이 성장해 왔다. 무심코 성장하던 어느 순간에 아무 생각 없던 물소리가 들렸다. 계절마다 소리를 바꾸는 개울의 물소리가 신기했다.


물소리는 계절을 닮는다.

계절이 주는 행복은 흐르는 물도 알고 있다. 의미 없이 흐르는 것 같아도, 생명도 없이 그저 흐르기만 할 것 같아도 물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다만 우리가 미처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물은 소리로 자신의 행복을 노래한다. 그렇기에 물소리는 계절을 닮아간다. 행복을 느끼는 만큼 목소리가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미지:Pixabay

추위가 온다. 먼 길 건너온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계절이 되면 표정 없던 물마저 창백해진다. 날카롭던 육각의 엉성함이 시린 이불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기에 개울물은 견디지 못해 두꺼운 순백의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물소리는 동장군의 으름장에 숨을 죽인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흐른다. 숨죽여 산다는 것은 아마도 삶의 고된 날들이다. 사람들에게도 강제된 침묵은 스님들의 묵언수행만큼 어렵고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해가 자라나고 봄이 조용히 기지개를 켠다. 이 시간이 되면 얼었던 개울에도 작은 변화들이 생긴다. 단단하기만 할 것 같았던 얼음은 군데군데 엉성한 숨구멍이 뚫렸고, 숨죽였던 개울물은 깊은숨을 토해낸다. 작은 틈새로 이어지는 숨소리는 작지만 청아한 소리를 만든다. 시원하고 맑은 소리는 봄이 다가오는 시간을 따라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봄을 닮아간다. 익숙해지다가 실증 날만 한 시간이 되면 계절은 어느새 저 멀리 도망을 한다. 익숙함은 나태함의 발단이 된다. 그렇기에 계절은 익숙함을 경계했던 것이다.

이미지:Pixabay

해가 정수리를 노려본다. 자라난 잎새들은 어느새 당당한 성장을 완성했고, 땅이 품었던 수분은 어느새 증발해 갈증을 유발한다. 목마른 잎들은 구름을 불러 비를 청한다. 아차! 하는 소리에 비는 어느새 장마가 되었다. 잎들의 과욕에 성난 함성을 지르며 가진 힘을 자랑해 본다. 검붉은 핏줄을 사정없이 드러내고 젊음을 뽐낸다. 장마가 지난 후에도 개울은 여전히 힘이 넘치고 물소리도 시원스럽다. 덩달아 새들도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렇게 여름에 동화되어 간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곡식들을 본다. 당당하고 뻣뻣하던 여름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인다. 숙이는 고개만큼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계곡을 흐르던 물에도 어느새 거칠던 반항은 사라졌다. 화려한 가을이 내려놓은 나뭇잎을 가만히 품어본다. 품은 화려함은 이내 물소리에 녹아든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적당한 운율을 흘리며 자신의 멋을 노래한다. 가을이 되어간다.

이미지:Pixabay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이 있다면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 물소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분명히 물소리는 다르다. 감정도 없이 흐르는 듯 하지만 계절을 닮은 그들의 마음이 소리로 들려온다. 물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 소리는 치유의 소리가 된다. 세상에 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 삶을 어루만져주고, 마음을 씻어주는 소리가 된다.


우리는 편함을 찾아 자연을 벗어나 공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과 편리함과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공해를 닮아가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산을 찾고 자연을 생각하는 이유는 공해를 닮아가는 우리의 무의식이 살아남고자 하는 신호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자연에 귀 기울이며 닮아가는 공해를 밀어내 보자. 물소리를 들으며 물소리를 닮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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