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분주하게 돌아가는 사무실이었지만 왠지 차분해지는 마음에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해 혹시나 싶어 사무실에 사고 날 것은 없는지 둘러봤다. 아무 이상이 없어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반대를 했다. 날리는 털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배설과 주체할 수 없는 사춘기의 이빨이 싫어서였다. 아들은 수시로 나를 설득하려고 했고, 옆지기는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아들 편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의 완강한 거부로 대안을 찾은 것이 팻 카페였나 보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팻 카페를 즐겨 찾았고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아들의 선생님이 문제였다. 때마침 키우는 닥스훈트가 새끼를 낳았다고 아들에게 자랑을 했고, 아들은 자기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선생님은 과제를 주고, 잘해놓으면 보상으로 강아지를 입양 보내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옆지기와 사전에 작당모의(?)를 끝내고 과제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퇴근하는 나를 붙잡고 세 사람이 설득을 한다. 아들은 눈물로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얼마나 키우고 싶으면 저럴까 싶어 몇 가지의 약속을 지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아들은 어디를 가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고 싶어 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강아지와 보내곤 했다. 목욕도, 배변판 청소도, 산책도 모두 아들과 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좋아하니 시키지 않아도 어찌 그리 잘하는지 모르겠다.
닥스훈트 새끼는 손바닥보다 조금 컸고, 단모종이라 털이 날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닥스훈트는 생각보다 영리했다. 배변훈련을 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패드에 배변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볼일을 보면 패드 한쪽을 당겨 덮어놓았다. 장난감을 주면 같이 놀자고 따라다니고, 배부를 때 간식을 주면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찾아내서 먹곤 했다. 사람들은 서울대 갈 만큼 똑똑한 강아지라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런 강아지에게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빨이 간지러운지 뭔가 깨물 수 있는 것은 모두 깨물고 다녔다. 개껌이나 장난감도 오래가지 못했다. 만약 휴지가 사정권 안에 놓이면 굴리고 다니며 뜯고 풀어놓기 십상이었다. 한 번은 에어컨 전원 플러그를 깨물어 전선을 다 끊어놓기도 했고, 나무 의자 다리를 깨물어 절반을 뜯어 놓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면 반성한다는 듯이 두 앞발을 오므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아닐지도 모르지만 식구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보다 못해 데크 위에 강아지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것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다. 화단을 온통 다 파내 식물들이 살 수 없게 만들었다. 간식을 주면 땅을 파고 묻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기도 했다. 힘이 남아돌아 마당과 화단을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화단에 길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다. 옆지기는 식물들이 시들거나 죽으면 울상을 한다. 잘 가꿔 꽃이 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꽃밭을 망치기 일수였다. 강아지가 그랬으니 뭐라 말은 못 하고 파놓은 구멍들만 메우며 하소연을 한다.
"훈트 때문에 화단이 엉망이야!! 쟤 좀 어떻게 해봐요."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데?"
"내 아끼는 꽃들이 다 죽었어, 구하기도 힘든 꽃인데...ㅜㅜ"
"어쩔 수 없잖아 훈트 키우는 동안은 아무래도 화단은 포기해야 할거 같은데..."
"확!! 다시 보내버릴까?"
"아들 설득할 수 있으면 해 봐, 난 빠질게~ "
결국 아들한테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한다.
못 말리는 것은 집 앞을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산책을 시킬 때도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 무조건 달려들었다. 짧은 다리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리 뛰어 쫓아갔다. 몇 번을 간신히 쫓아가 잡았지만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들리면 흥분을 해서 말릴 수 없다. 다른 건 괜찮은데 왜 오토바이만 보면 그렇게 달려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몇 년 전 햇살 따뜻했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라 집에 있었던 아이들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시켜먹었다고 한다. 자장면을 내려놓고 현관을 나서는 사이 강아지가 그 틈에 마당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걸 보지 못했나 보다. 배달 아저씨는 대문이 살짝 열린 상태로 그냥 오토바이에 올라 출발을 했나 보다. 훈트가 오토바이 소리에 대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때쯤 훈트의 부재를 알아차린 아들이 뛰어나왔고, 대문을 빠져나가는 훈트를 잡으려 대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오토바이만 보고 달려가던 훈트는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들이 지르는 소리에 옆지기가 놀라 뛰어나왔고 서둘러 훈트를 안아 차에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옆지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불안했던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옆지기가 소리를 지르며 훈트가 사고 나서 동물병원에 온다는 말을 했다. 순간 오토바이를 쫓아가는 훈트가 떠올랐다.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말을 하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갔다. 동물병원이 사무실과 50m 정도라 금방 도착했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옆지기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훈트를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뒤따라 아들이 차에서 내리는데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고, 옷에는 피가 흥건했다. 사고 장면을 목격해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가 무섭다며 발을 잘 못 움직였다. 부축해서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에 들어서기 무섭게 응급처치가 시작됐고, 수술실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아들은 진정되지 않아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간호사가 물 한 컵을 가져다줘서 물을 먹이며 한참 동안 달래고 있는데 수의사 선생님이 불렀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심장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은 이내 통곡을 하며 주저앉았다. 옆지기도 울면서 살릴 수 있는 뭐라도 해봐 달라며 사정을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건 다해봤는데, 도착하기 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더는 방법이 없는 건가요?"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혹시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으시면 지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체이기 때문에 수습을 해야 해서..."
아들과 옆지기를 데리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대 위에 누운 훈트는 평안해 보였다. 수의사님이 뒤처리를 이미 다 했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옆지기와 아들을 집에 데려다 놓고 안정을 취하도록 하라고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잘 아는 사장님께 전화해서 훈트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상자를 주문했다. 첫날, 아들은 먹지도 않고 울다가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다음 날까지 잠만 잤다. 출근했다가 마치고 퇴근하니 그때쯤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 밥을 조금 먹고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잘 다독여주고 내일은 훈트를 잘 보내주자고 했다. 그제야 일어나 훈트의 관에 넣어 줄 사진과 장난감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서 훈트의 사채를 상자에 담아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집 산으로 갔다. 겨울이라 흙이 잘 파지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양지라 10cm 정도 파고 나니 그 뒤로는 파기 쉬웠다. 상자를 잘 넣고 흙으로 묻어줬다. 봉분을 만드니 아들이 돌을 하나 주워와 앞에 세워놓는다. 아들 눈에는 여전히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지 계속 훈트의 묘를 돌아봤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가슴이 아팠다.
한동안 아들은 그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멍 때리고 있기도 했고, 아침이면 베개가 젖어있는 날들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가 보다. 꽃이 피는 봄, 할머니 집에 방문하니 아들은 말도 없이 조용히 훈트가 묻혀있는 곳으로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용히 뒤따라 가니, 아들은 언제 챙겨 왔는지 꽃이 핀 작은 화분을 세워놓았던 돌 앞에 심어준다. 그리고 한참 그곳을 서성거렸다. 지켜보던 나는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픔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나 보다.
사건이 있은 후, 아들의 마음은 훌쩍 커버린 듯했다. 뭔가 생각이 깊어진 듯하고, 왠지 어른스러워진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전에 부리던 어리광은 사라지고 듬직한 아들이 되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누구나 마주해야 하고,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했던 시간이 한 뼘 성장시켰을 것이다.
훈풍에 햇살이 익아가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작은 화분에 피는 꽃을 보니 그날, 아들이 심어주던 노란 꽃이 기억을 자극한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훈트, 아들에게는 너무나 아픈 상처였지만 좋은 추억이었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픔은 시간 속에 잊히고, 남은 기억은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만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주택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많은 일들의 중심에 있다. 행복과 아픔, 울고, 웃고는 시간 가운데 삶은 무르익어간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주택이라서 발생되는 일을 아니지만 삶의 중심이 주택에 있으니 어쩌면 연관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속에서 주택은 묵묵히 그 품을 내어주고 있는 듯하다.
오늘도 데크 위에는 깊이 밀려오는 햇살이 봄과 노닥거리는 오후다. 화단에는 머지 안아 다시 꽃이 필 것이다. 마음에는 꽃내음 품은 행복이 몰래 자라날 것이다. 봄이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