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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16. 2022

봄비는 화단을 깨우고

주택에 사는 맛

아침부터 귓전을 맴도는 봄을 부르는 계절의 연주가 감미롭다. 데크에 앉아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차례를 기다려 떨어지는 모습,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우아한 곡선의 미를 살린다. 어쩌면 순간에 지나지 않을 저 몸짓은 저들이 만드는 춤사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듯 다른 그들의 행적은 세상을 품고 저 깊은 암흑 속에 갇혀있는 씨앗을 깨우는 것이 그 종착역은 아닐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는 생명의 전도사, 그 사역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미 날씨는 봄이었다. 완연한 봄날을 상기시켜주던 어제는 오랜만에 반팔로 화단 정리를 했다. 지난해 화려했던 야생화들은 시린 겨울을 만나 초록의 양분을 모두 빼앗긴 채 형체만 간신히 남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윤회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것은 생명이 벗어놓은 껍질뿐이다.

겨울 어느 전원주택 @소향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영생을 살 것처럼 우리는 매일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한정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인정을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우리 삶은 조바심과 슬픔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막연한 두려움이 된 것은 아닐까.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봄, 화단에 꽃씨를 뿌리면서 몇 년이고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잘 성장하고 한 철 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꽃이 피면 그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고 꽃이 지면 아쉬움으로 마음을 정리하면 그만이다. 꽃이 진다고 슬퍼하고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편해지는 마음과 지금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과정에서 더욱 알찬 삶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해 본다.

봄을 맞이하는 새싹들이 통통 튀어오른다. @소향
깊은 봄의 향기를 뿜고 있는 튤립 @소향

화단에 묵은 허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반가운 봄의 소식이 전해졌다. 겨우내 숨은 채 숨죽여 있던 뾰족한 생명이 봄을 보여준다. 아직 여린 새싹들을 보는 마음은 꽃을 보는 듯 아름답다. 화단에 부서지는 햇살이 화려한 것은 어쩌면 피어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어린 생명들은 사람들을 미소로 이끌어 준다. 거친 흙을 뚫고 자라나는 새싹의 앙증 은 기지개는 이미 우리들 마음을 점령해 버린 듯하다.


오늘은 봄비가 하루 종일 목마른 대지에 촉촉한 노크를 한다. 장미 가시에도 피가 돌아 생기를 더해가고, 가지마다 초록의 잎들이 성장을 밀어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느새 5월 어느 하루에 도착해 있다. 싱그러운 햇살 고즈넉한 저녁노을이 물들어가는 시간이면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는 커피 한 잔을 내려 샬톨멘 테이블에 앉아 장미향에 취한다. 지나는 길손들의 관심은 화려한 장미에 머물고 있고, 환하게 빛나는 플래시에는 그들의 마음이 녹아 있다. 이따금 대문을 '삐~이~걱' 열고 들어오는 불청객의 홀린 발자국으로 놀라기도 할 것이고, 반가운 이웃의 미소를 만나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반복이 때로는 감정을 건드리기도 하겠지만 악연이 아니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인연은 어쩌면 우연 속에서 시나브로 연결되는 것 인지도 모르니까.

지난 해5월 어느 날 장미 @소향
지난 해 5월 어느 날 장미 @소향

벨 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돌아왔다. 우중에 방문한 사람은 잘 아는 인테리어 사장님이다. 얼마 전 낡은 담장과 창고를 헐고 새로 작은 건물을 지어야겠다는 말을 했다. 손대는 틈에 화단도 이곳저곳 손을 볼 예정이다. 문제는 화단에 숨어있는 그동안 함께해 오던 생명들의 처리다. 다행히 사장님은 임시 거처로 쓸만한 장소를 제공해 주겠다고 한다. 새로 지어질 건물의 원하는 디자인을 체크하고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어쩌면 올해는 화단의 화려함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새로 디자인하는 화단의 구성은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바뀔 예정이라서 말이다. 새로운 화단의 코드는 장미다. 야생화도 충분히 자리를 잡겠지만 일정 부분을 장미로 채워 공간의 구성을 새롭게 할 계획이다. 힘든 한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화단의 식물들도, 나도. 그래도 고치며 살아가는 주택의 재미는 더욱 풍성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깽깽이와 조팝의 봄은 이미 시작이다. @소향
거실에도 노란 봄은 찾아온다. @소향

다시 빗소리가 굵어진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화단 사이로 작은 불이 세상을 밝힌다. 올 한 해 변화의 중심은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방울진 볼륨을 키워가고 있다. 밤이 그 사이를 채우며 천천히 다가온다. 소.리.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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