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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08. 2022

길냥이의 층간소음

주택에 사는 맛

층간소음 복수 상품으로 우퍼스피커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다. 위층과 층간소음 문제로 폭행이 발생되어 구속됐다는 뉴스도 들린다. 모두 아파트의 층간소음이 만들어낸 사회문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는 점점 더 사람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층간소음은 이해와 배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어쩌다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겠지만 지속되는 소음에는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팩트다. 반복적인 소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아파트의 층간소음을 피해 주택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층간소음 문제는 거의 매일 발생되는 트러블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기피하기 위해 주택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


결혼 전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 혼자 아파트 생활을 할 때 층간소음을 경험했다. 밤 11시부터 이어지는 소음은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현관에 메모를 해 놓기도 했고, 초인종을 눌러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안돼 결국에는 일이 커져 감정싸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불행 중 다행인지 직장을 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층간소음에 지쳐 주택에서 살기로 한 지 어느새 20년이 되어간다.


주택은 평온했다.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어 이따금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의 목소리가 반갑기도 했다. 그 이유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라고 해 두자.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택은 천국이었다. 소리를 질러도, 뛰어다녀도, 피아노를 쳐도 어느 누구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들은 우리 집을 놀이터쯤으로 안다. 모임 장소는 언제나 우리 집이 되었다. 시간과 소음의 제약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2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평온한 어느 날 밤, 낯선 층간소음이 들렸다. "후다닥, 벅벅벅. 투두둑" 갑작스러운 소음에 바짝 긴장을 했다.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혹시 작은 구멍으로 쥐라도 들었나?'

'아니야, 이 집에 살면서 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생길 수 있겠어?'

'그럼 이 소음은 도대체 왜 들려오는 거지?'

잠시의 소란이 있은 후 천정은 이내 고요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천정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렇게 조용하지!'

그날 이후 한동안은 이전과 같이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천정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랐다. 우리 집은 단층 주택인데 천정에서 아기 울음소리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혹시 뒷집에 아기가 놀러 왔나 싶어 뒷집에 귀를 기울였다. 뒷집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고, 게으른 햇살만 덩그러니 데크에 누워 길게 하품을 하는 것 같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다리를 준비해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천정 안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통로가 있기에 그곳으로 천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천정 안은 밤보다 더 짙은 어둠이 숨어있었다. 뭐가 나올지 몰라 조심해서 천정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겨우 머리부터 가슴 정도까지 밀어 넣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플래시를 켜서 이리저리 비추어 봤다. 처마 끝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플래시를 계속 비추니 고개를 돌린다.

무단 세입자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 새끼였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듯 너무 앙증맞은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의지한 채 누워있었다. 어미 고양이는 소란한 틈에 잠시 자리를 비웠거나 먹이를 찾으러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고양이가 어디로 들어왔지?'

5년 전 이기는 하지만 인테리어를 하면서 천정과 지붕을 새로 했기 때문에 고양이가 들어올 만큼 큰 구멍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처마 밑을 전부 살폈다. 눈으로 쉽게 확인되는 곳에는 어떤 작은 구멍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남은 곳은 현관 위 콘크리트와 처마 사이의 주먹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뿐이었다. 그냥은 볼 수 없어 플래시로 비췄다. 그러다 작은 틈을 하나 발견했다. 이음새 부위를 밀어서 틈을 벌려놨다. 주먹 하나 겨우 빠져나갈 것 같은 공간, 그곳으로 길 고양이가 들어왔나 보다.


길 고양이는 추위에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모진 애를 썼나 보다. 인위적으로 발생된 틈이 아닌, 밀고 긁어서 만들어진 틈의 흔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쨌든 천정에서 길양이는 출산을 했나 보다. 지난번 소음은 어쩌면 출산의 고통을 대신했던 소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천정 속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뭔가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천정에 단열재가 깔려 있기 때문에 그위가 그나마 온기를 잡아 줄 것 같기는 했다.


무단 세입자는 사실 크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엄동설한에 새끼를 내보낼 수 없어 그대로 뒀다. 어미도 수시로 드나드는 광경이 목격됐지만, 생각보다 층간소음을 만들지는 않았기에 새끼들이 성장하면 떠나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4월 어느 날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마실을 나왔다. 마당으로 내려와 제 집인 냥 둘이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식구들 목소리를 자주 들어서 그런지 가까이 가도 도망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고양이에게 먹을 것과 물을 주고 헌 옷으로 집을 만들어 줬다.


그런데, 길 고양이의 습성이었을까? 길 고양이 새끼들은 얼마 머물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우리가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미 고양이와 함께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티가 난다더니 그런가 보다. 꼬물대던 생명이 훌쩍 떠난 빈자리는 한동안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붙잡아 키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해 본다. 그들의 삶이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천정에 난 구멍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구멍까지 손을 넣어야 하는데 처마와 콘크리트 사이의 틈이 작아도 너무 작아서 손이 들어가지 못했다. 공간이라도 막을까 생각을 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갈데없는 고양이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차라리 작은 집을 하나 만들어 놓을까 고민을 해 본다. 이게 고민을 해야 할 문제인가 생각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봄은 또 그렇게 깊어만 갔고, 시간은 쉬지 않고 달려서 어느새 봄이 코앞에 다가왔다. 훈풍이 불어오는 길목에서 귀 기울여 본다. 올해, 층간소음은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가만히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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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feou/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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