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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Mar 07. 2022

마당은 감성의 씨앗이다

주택에 사는 맛

주택의 중심에는 마당이 있다. 아파트와 같이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택이 가지고 있는 마당의 맛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불편함의 원인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감칠맛 나는 감성을 맛보지 못했기에 그 맛을 느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주택은 왜 불편함이 존재할까? 아파트는 주거공간 외에는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렇다 보니 모든 생활 반경은 건물 안, 현관을 경계로 하여 독립된 공간이 전부다. 결국 생활 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공간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 좁아진 공간에 마당을 넣을 수 없고, 흙을 넣을 수 없고,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제약이 더해지면 포기를 한다. 아파트에 대형 과일나무를 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 아니 대형 과일나무를 심을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흙이 없기 때문에 살아있는 잔디를 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공간의 제약은 아파트에 마당을 설계하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마당이 없으니 생활 반경을 확장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확장할 수 없는 공간의 선택지는 그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자연의 누림을 포기해야 하는 대신 심플함이 주는 편리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택은 공간의 확장이 불편함을 준다. 대부분의 주택은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지나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당연히 마당은 건물의 일부일 것이고, 건물에 사는 사람이 관리해야 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건물 안의 생활 반경이 건물 밖의 마당까지 미치게 되는 이유다. 여기에서 불편함은 시작되는 것이다. 건물 안에 국한된다면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단열 문제로 난방의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단열 문제도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 그러나 건물 밖으로 생활 반경이 확장됨으로써 손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 동시에 확장되는 것이다. 관리가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는 이유다.

주택의 불편함을 생각해 보면 사실은 별거 없다. 잡초가 자라면 뽑아주고, 잔디가 자라면 깎아주고, 낙엽이 떨어지면 쓸어주는 등등의 어찌 보면 청결과 관리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쉽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들을 귀찮게 생각한다면 역시 아파트 생활이 제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주택을 동경하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중심에는 마당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당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화단이 있을 수 있고, 식물들을 취향에 맞게 키울 수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테이블도 놓이고,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마당은 이런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순히 생활공간의 확장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확장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 기회를 통하여 자연과 이어지고,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확장의 공간인 마당은 감성의 씨앗이다. 유년을 돌아보면, 한여름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세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하고,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반딧불을 잡고, 술래잡기를 하던 곳이다.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던 곳이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던 곳이 바로 마당이다. 마당에서 우리의 감성은 발아되고, 성장하고, 지금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니 마당이 어찌 감성의 씨앗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가을 어느 날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말을 한다.

"혹시 나중에라도 우리 집 팔지 마세요."

"왜? 이 집을 팔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

갑자기 집을 팔지 말라는 말에 궁금해서 물었다.

"이 집은 어렸을 때 제가 자란 추억이 있잖아요. 혹시 제가 여기 살지 않더라도 나중에 한 번씩은 어렸을 때 살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옆에 있던 둘째 딸아이가 덩달아 나선다.

"오빠가 이 집에서 안 살 거면 내가 살래요."

"너는 이 집에서 살고 싶은 이유가 있어?"

"나는 그냥 이 집이 좋아요. 그리고 고치거나 만들게 있으면 아빠가 만들어 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너 이 집 절대로 팔면 안 된다 알았지?"

듣고 있던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작 집주인은 집을 팔지 말지 생각도 안 했고, 더구나 누구에게 준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상태인데 아이들은 벌써 자기들이 결론을 다 내린다. 옆지기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이들에게도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이 소중한 유년의 기억으로 생각되는 듯했다. 그러니 그 추억을 미래에도 회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당은 역시 감성이 자라고 추억이 익어가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가끔은 번거롭게 생각됐던 일들이 감성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버리기 아까운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마당이 있어 참 다행이다.

봄바람이 불어온다. 지친 겨울은 이제 쉬러 갈 시간이다. 마당에는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뾰족이 내밀고 있는 식물들처럼, 우리들 감성들도 이곳에서 뾰족한 싹을 틔우고 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행복이 예쁘게 피어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가뭄이 길어지는 길목이라 오늘은 마당에 물을 뿌려봐야겠다. 감성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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