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늦은 고백

by 소향


바람마저 피할 수 없어 물들어가는 계절

억새 옷매무새 스치는 소리에 가을만 깊어갑니다

이미 숙성된 야생의 연주는 한 계절 모퉁이를 돌고

설익은 감정은 어렵지 않게 다가와 머물렀습니다


익어가는 것은 어쩌면 아픔 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과실이라면 아마도 달콤한 솜사탕일 텐데

익어가기도 전에 고독이 수북이 쌓이고 있습니다

온종일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어둠이 대지에 물들어 가을에 빗장을 걸면

못 이기는 척 스위치를 넣어보고 싶습니다

달이라도 환하게 밝아지도록

별은 어쩌면

동트는 새벽 이슬로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것은 여전히 설레는 일입니다

바람 분다고 다 내어주고 난 뒤

텅 빈 들녘에 서서 길을 잃을 지라도


말없이 돌려보낸 어제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힙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후미진 가로등 아래서

채우지 못해 한 칸씩 비워놓은 원고지 속에서

생각은 또 가을로 물들고 있나 봅니다

사진: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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