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아래서

by 소향

소향

너와 나 사이에는
계절 보다 온도의 의심이 걸려 있어요
투명한 무게들이 서로를 겨누는 그 틈에
거미줄은 창을 가두는 방식으로 빛을 그려내고
그 흔들림에 기대어 하루를 접고 있어요

창살은 없지만,
생각은 자꾸 투명한 선 위에 그림자를 쌓고
그림자는 날마다 무게를 얻어
이름 대신 주파수로 울려요

바람은 거미줄에 봄을 매달다 떨어뜨리고
햇살은 그 흔적을 수놓은 뒤, 태연히 사라졌어요
기다림은 누군가의 부재를 탓하며
계절의 팔을 살며시 접고 있고
너는 그 너머에서
아무 말 없이 자라는 중이에요

우리는 서로의 실루엣을
반사된 창에 그리다가 지우기를 반복했고
서로를 닮지 않기 위해
닮아야만 했던 표정들로 거리를 조율했죠

봄비는 아스팔트 위에서
마지막 설득처럼 스며들다
한 문장 안으로 미안함을 묻었어요
“너와 나 사이에 미안함이란 없어”
그 말은 혀가 아닌,
내장 깊숙이 남긴 인두처럼
천천히 나를 파고들었어요

존재는 거미줄에 붙잡힌 빛처럼
여전히 끈적하고, 무의미하고, 유의미해요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방식으로만
서로를 품고, 누르고,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그 자리에,
너는 여전히 없고
상상은 쉼 없이 나를 거미줄에 올리고 있어요
상상이야말로 가장 오래 사는 실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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