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파란 하루

by 소향

파란 하루 한 장이 어제로 넘어진다
저항 없이 넘어진다는 것은
그 하루에 하고 싶던 말을
끝내 삼킨다는 뜻이었다

구겨진 페이지가 손 끝을 잡으면
숨어있던 숨결이 문장처럼 번지고
주름진 마음이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살아난다

초침은 자꾸만 끊어졌다
호흡 사이로 실밥을 꿰듯
기억을 기워 넣으며
하루를 붙잡아본다

가끔은
접힌 구석에서 너의 온기가 난다
식은 문장이
되레 따뜻한 표정을 하고
차마 쓰지 못한 말들이
한참을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에 적힌 여백이었고
함께 있는 순간보다
헤어지는 방식으로 더 오래 기억되었다

파란 감정은 끝물의 미련이었을까
희망을 말하려다 슬픔에 젖는 색
어쩐지 파란 하루는,
늘 이별에 가까웠다

말라버린 그리움은
종이처럼 잘 찢어진다
번진 감정의 가장자리는
다시는 붙일 수 없게 너덜해지고
삶은 자꾸만
책처럼 접혀간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내일로 가는 길목은 벌써 마음에 허전함을 매단다
하늘은 적막을 머금은 채
파란 숨결을 꾹꾹 눌러쓰고 있다

아무 말 없이
하루가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이 마르지 않아
종이 위에 남긴 주름이
내가 살아 있었다는
너와 함께였다는
유일한 증거다

그리고 오늘도,
한 장이 주름 쪽으로 기울어 간다
다시는 펼 수 없는 모양으로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비워냈다
너라는 이름의 색을 입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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