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이전의 시

by 소향

의미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잉크는
마르지 못한 체온으로
종이 아래
숨을 참는다

말보다 먼저
깨진 소리가 있다
손끝은
언어의 뼈를
조심스레 만지다
금이 간다

시가 쓰이지 않아도
종이는
심장처럼
천천히 뛴다
읽히지 않는 행들 속에서
이미
네 안이 울고 있다

침묵은
말보다 큰 울음
지워진 문장들이
숨 쉴 곳을 잃고
너의 폐 안에서
천천히
떠다닌다

젖은 성대에 눌린 문장 하나
이름도 없고
순서도 없이
기억이라는 어둠 속
가장 안쪽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마지막 행은
쓰이는 순간
사라진다
눈꺼풀 안쪽에 맺힌
말하지 못한
한 점의 온도처럼

그러므로
이 시의 이름은
읽히지 않은 너의 떨림
말해지지 않은 한 줄
아직
도달하지 않은
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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