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투명한 유리 속에
말하지 못한 얼굴들이
빛 없이 가라앉아 있다
소주를 따른다는 건
그들을 다시 물 위로 올리는 일
무게보다 가벼운 슬픔은 없다
서늘한 병목을 지나
시간이 맺힌다
입술에 닿기도 전에,
오늘은 이미
어제의 체온으로 식어 있다
소주를 마신다는 건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지워진 말들의 자리를
유리의 벽으로 옮겨놓는 일
그 벽엔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의 지문이 남아
투명한 장례처럼 흔들린다
식어가는 안주 위에
그들의 이름이 비스듬히 앉아 있다
그리고 조용히 식어간다
식은 것과 식지 않은 것의 의미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소주를 마신다는 건
삼키는 일이 아니라
텅 빈 잔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일
속이 아니라
속에 들여다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유리에 남은 입술 자국은
방금 남긴 말보다 오래
마음의 벽을 누른다
비워낸다는 건
잊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소주를 마신다는 건
결국,
한 잔의 그림자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오지 않을 사람들과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서로 마주 앉히는 일이다
* 소주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