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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Oct 03. 2022

좋은 아빠의 조건

썬데이 파더스 클럽

마흔이 된 작년, 올림픽이 한창이던 여름의 중간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이제 8개월이 되었고 나 역시 8개월 차 아빠가 되었다. 아내는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 아내 대신 아침저녁 육아를 맡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본다는 건 매일 두 가지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체력적인 어려움이며 또 다른 한 가지는 시간의 부족함이다.


아이는 매우 잘 세팅된 알람시계 같아서 매일 아침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여지없이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눈을 뜬다. 전날 밤 아이와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면 아이와 함께 일어나는 게 크게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때때로(마치 이 칼럼을 쓰는 지금처럼) 밤 늦게 할 일을 마치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 때면 아이의 기상 시간에 함께 일어나는 일이 꽤나 힘겹다.


시간의 부족함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과는 조금 다른 어려움을 가져온다. 아침 시간이야 그렇다 쳐도 매일 저녁 아이를 봐야 하는 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뼛속까지 ‘E’형이다. 게다가 깊고 좁은 취향이 아닌 넓고 얕은 취향을 가진 터라 온갖 것에 관심을 갖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저녁마다 많은 일을 했다. 일과 후 가까운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은 기본이고 일에 도움이 되거나 관심사와 관련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주말에는 저녁 약속만 2~3개씩 잡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이후 이 모든 건 그림의 떡이 되었다. 8개월 동안 저녁 약속을 가진 건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을까? 한 달에 한두 번은 꼬박꼬박 찾았던 극장은 아이가 태어나고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만약 내가 20대나 30대였다면 육아 때문에 모임이나 강의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꽤 답답했을 것이다. 어두운 스크린 앞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귓가를 때려대는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극장이 사무치게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간혹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어쩌면 이건 40대에 아빠가 된 나에게 주어진 행운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20~30대를 지나 40대가 된 지금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내면의 나에게 더 집중하고 있다. 더 많이, 더 잘 갖기 위한 방법보다 잘 내려놓고 잘 거절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신 영화 정도야 넷플릭스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어찌 보면 육아와 관계없는 가치관의 변화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육아를 더 잘할 수 있는 가치관으로의 변화이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미 아빠가 된 지 몇 년 된 지인이 건네준 육아 팁이 기억난다. “뭘 하고 있건 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바로 엉덩이를 떼면 돼.” 이게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이 팁을 실천하기가 꽤나 어렵다. 친구와 카톡을 나누다가, 집중해서 드라마를 보다가, 맛있는 치킨이 막 도착한 찰나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아 누가 대신 좀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인이 전해준 팁은 육아에 필요한 ‘피봇팅’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피봇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 그 어느 친구들 못지않게 농구에 열심이었다. 농구를 하며 처음 배운 규칙은 드리블을 멈추고 공을 잡아 들면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 발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발을 360도 회전해가며 마치 컴퍼스가 움직이듯이 몸을 움직이며 패스를 하거나 공격할 곳을 찾으면 된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바로 피봇팅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내 삶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왔다. 나를 중심에 두고 마치 피봇팅을 하듯이 다양한 관계를 맺고 다양한 모임을 가져왔다. 육아를 한다고 해서 내 관심사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대신 무엇을 하건 간에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 준비를 하고, 아이가 나를 찾으면 언제든 아이를 향해 내 몸을 돌릴 수 있으면 된다. 피봇팅을 하는 대상에 ‘아이와의 시간’이 추가된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삶의 피봇팅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피봇팅을 잘하는 사람은, 아빠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삶 역시 굳건히 다져가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굳건해야 아이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중심축을 지지하는 발이 단단해야 ‘아이’를 향해 움직이는 다른 발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피봇팅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삶에 더욱 충실하려 한다. 언제든 나의 아이에게 향할 피봇팅 능력을 기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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