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혁진 Oct 03. 2022

아이 덕분에 직장을 구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얼마 전, 취업을 했다.


‘뭐든 하면서 먹고살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전 직장이었던 BC카드에 사표를 낸 게 2017년 6월이다. 지난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강의였다. 대학, 기업에 나가 마케팅 강의를 했다. 회사를 다니며 따 둔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퍼실리테이터 자격증 덕분에 여러 곳에서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 레고 브릭을 활용해 팀빌딩, 협업, 리더십, 기업 비전 등 추상적 가치와 비전을 시각화하도록 돕는 교육법.


6개월이 지나 2018년 새해가 밝았고, 강의 초보였던 내게 이른바 강의 비수기가 찾아왔다. 강의 문의가 뜸한 연초가 되면 베테랑 강사들은 주로 강의 원고를 업데이트하거나 책을 쓴다고 했다. 나는 좀 더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었다. 1인 기업이나 퇴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바로 페이스북에 사람들을 모으는 글을 올렸다. 1주일 뒤 40여 명의 사람들로 시작한 ‘월간서른’은 1년 뒤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책을 쓰기도 했다. 나 포함 5명의 지인이 6년 간 이어온 팟캐스트 <마케팅 어벤저스>를 끝내며 첫 책 《마케팅 차별화의 법칙》을 썼다. 첫 책을 시작으로 한 해에 한 권씩, 총 3권의 책을 썼다. 그 덕에 회사원일 때는 꿈같던 출간이 이제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위기가 닥쳤다. 역병이 발병했다. 내가 하던 모든 일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강의, 워크샵 그리고 ‘월간서른’까지. 오프라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월간서른’의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이게 맞나…?


나에게는 늘 ‘하고 싶은 일’이 존재했다. 회사에 다닐 땐 강의를 하고 싶었고, 강의할 때는 책을 쓰고 싶었다. ‘월간서른’을 할 때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이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어디에도 내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하루하루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갱신하던 아이 얼굴을 보다가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난 진짜 뭘 하고 살고 싶은 걸까?

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이런 고민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내 손에 닿는 일을 이어갔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조금 달랐다. 이 아이와 꽤 오랜 시간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하고픈 게 없다며 멈춰 있을 수 없었다. 빠르고 깊게,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결국 마케팅과 글쓰기를 떠올렸다. 이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다른 일들은 모두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꾸준히 해나가면 될 터였다. 하지만 마케팅은 회사라는 조직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어떤 회사에 갈 것인가. 대기업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성장의 기회가 있는 스타트업으로 결정했다. 몇몇 유명 스타트업에 지원했다. 어디든 한 곳은 붙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과는 냉혹했다. 몇 번에 걸쳐 고배를 마시다가 생각을 바꿨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에게 제안해보자. 나와 함께 일할 회사를 찾는다는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감사하게도 60개가 넘는 회사에서 이력서나 만남을 요청했다. 그중 30개 회사의 대표들을 만났다. 최종적으로 한 곳을 선택했다. 


회사에 들어간 지 2주가 조금 지났다. 아직 적응 단계지만 다시 취업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표, 좋은 회사, 좋은 팀원들을 만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마케팅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게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이 모든 결과의 시작은 결국 아이였다. 세상에 지키고 싶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속칭 ‘분유값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취업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돈은 어떤 일을 해서든 벌 수 있다. 직장에 들어가면 밖에서 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적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 마케팅을 하게 된 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뿐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고민하고 그 사명을 해낼 수 있는 일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 영역에서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하는 사람으로서 내 아이 곁에 남고 싶다.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움직이게 하는 힘. 그 힘이 아기에게도 있다. 아직 걷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이제야 아랫니 두 개가 나고 윗니 두 개가 조금씩 잇몸을 비집고 나오는 아이. 매일 아침 이 작은 아이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을 느끼며 출근길에 나선다. 아이와 최대한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해.


https://sundayfathersclub.stibee.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