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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Oct 03. 2022

여보, 애 또 싼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이서가 생후 6개월일 때 부산에 간 적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이서가 너무 어려서, 대신 자가용 카시트에 이서를 태우고 5시간 넘게 운전을 했다. 1박 2일 여행이었지만 첫 장거리 외출이었던 우리 부부(정확히 나)는 과도한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였다. 혹시라도 기저귀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에 새로 막 뜯은 기저귀 한 봉지를 그대로 챙겼다. 40개 넘게 챙겨간 기저귀 중 정작 사용한 건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 뒤로 외출할 때마다 적정량의 기저귀를 챙긴다. 외출 횟수가 늘어날수록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물품은 생략한다. 너무 많은 짐은 결국 외출의 재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의 짐이 점점 간소해지던 어느 날, 우리 부부에게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주 전 주말, 6월 25일에 있던 일이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서울에서 있던 가족 결혼식에 참석한 뒤 바람도 쐴 겸 파주 아울렛으로 향했다. 아이의 여름옷을 몇 벌 샀고 마침 내가 입을 만한 티셔츠도 자라에서 세일가로 저렴하게 나왔길래 기분 좋게 샀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발 사이즈가 커졌다며 출퇴근할 때 신을 편한 구두를 찾았다. 아쉽게도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을 동시에 충족하는 제품을 찾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의 집으로 가야 했다. 


집을 향해 출발한 지 20분쯤 지났을까? 뒷자리에서 아이가 용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응가를 하는구나.’ 전날인가부터 아이의 응가 소식이 없어 둘 다 불안하던 차였다. 육아 초반에는 아이가 차 안에서 일을 보면 꽤나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대개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 방수 시트를 깐다. 신속하고 정확하고 깔끔한 손놀림으로 기저귀를 간다. 아내나 나나 꽤 익숙해진 일이다. 물론 그날 결혼식장이나 아울렛에서 일을 봤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뒤처리를 했겠지만.


이번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파주 시내의 한 상가 옆에 있는 넓은 야외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구석자리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서 아이의 일처리를 했다. 기저귀를 쓰레기봉투에 담는 걸 마지막으로 모든 처리가 끝났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방금 갈아준 게 마지막 남은 기저귀였을 뿐. 집까지는 40분이 채 남지 않았다. 설마 그새 무슨 일이 생길리야 없다. 그런데….


“여보, 이서 또 싼다!” 아내가 외쳤다. 아이는 기저귀를 갈아주자마자 다시 용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여긴 시내잖아. 주변에 슈퍼도 있고 마트도 있겠지. 아이 기저귀 하나 못 사겠나. 아내가 기저귀를 사 오고 내가 아이를 안고 차를 지키기로 했다.


아내는 20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아무리 찾아봐도 마트가 없네. 편의점도 없고. 여성용 생리대라도 사갈까?” “일단 돌아와 봐. 근처에 차로 갈 수 있는 마트라도 찾아보자.”


잠시 후 아내가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요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코너만 돌면 바로 마트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내려가도 없는 거야”라며 걱정 반 원망 반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검색해보 여기서 7분 거리에 이마트가 있대. 빨리 타.”


무거워진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를 차마 카시트에 태울 수 없어 아내가 조심히 안았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고 신속하게 차를 몰아 근처 이마트로 향했다. 잠시 후 큰 간판이 보였다. 이마트가 이렇게 반가울 일이라니. 주차장 2층에 차를 세우고 냄새가 배일 수 있어 바지도 입히지 않은 채 아이를 안고 매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서는 크게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혹시라도 이 상태에서 버둥대고 울어대면 그야말로 ‘멘붕’이 왔을 텐데 감사한 마음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수유실 위치를 먼저 확인했다. 하필 기저귀는 지하 매대에서 팔고 있었다. “여보 5단계 찾아봐. 빨리!” 우리는 매의 눈으로 기저귀를 살폈다. “찾았어. 올라가자!”


한 손에는 아이를, 다른 손에는 기저귀를 들었다. 최대한 빠르게 결제하려고 셀프 결제 코너로 향했다. 삑. 기저귀 바코드를 찍었다. 이제 결제만 하면 된다. 순간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떴다. 바코드를 찍은 다음 결제하려는 상품들의 전후 무게를 인식하기 위해 단말기 오른쪽 공간에 물건을 다시 내려놨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바코드만 찍고 물건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만든 셀프 결제기가 정말 우리에게 편리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어쩌겠는가. 근처에 있던 직원의 도움으로 다시 결제를 마쳤다. 


막 결제한 따끈따끈한 기저귀와 엉덩이가 따끈따끈해진 아이를 양손에 안고 수유실로 향했다. 한 가족만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아울렛이나 쇼핑몰 수유실에 비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었지만 뭣이 중하겠는가.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으면 되었다. 기저귀를 벗기자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더 큰일이 날 뻔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많은게 아이 뱃속에 있었다니...)


아내는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나는 정신은 말짱했으나 온 얼굴과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이서 얼굴은 평온했다. 오히려 늦은 저녁 시간이다 보니 졸린 기색도 있었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다. 아들아.’

기저귀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2시간이었다   ©강혁진


다시 차에 오르니 벌써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쏜살처럼 흐르는 시간과 스펙터클한 경험을 함께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시동을 켜고 에어컨도 틀었다. 이마트를 빠져나오자 해는 이미 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뭔가 엄청난 미션을 우리 셋이 합심하여 이겨낸 기분이랄까.


그날의 긴박함이 아직 생생하다. 내 팔에 느껴지던 아이의 온기와 그날의 향도 기억난다. 아마도 이 에피소드는 아내와 나에게 꽤 오래 기억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아무리 힘든 일이 일어나도 멀리서 보면 풍경이라고. 정신없던 파주에서의 2시간이 이제 추억과 풍경이 됐다. 그날 샀던 기저귀는 여전히 차 뒷좌석에 놓여 있다. 혹시라도 같은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셋은 그렇게 위기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가며 조금씩, 함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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