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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Oct 03. 2022

난 태어나서 좋았나?

썬데이 파더스 클럽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에 앉아 있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조카 사진을 봤다. 조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적잖이 당황했다. 결혼 전 일이다. 내 아이를 낳는 것 역시 생각해 보기 전이었다. 그저 첫 조카에게 마음이 더 가서 그런가 보다 했다.


몇 년 뒤 이서가 태어났다. 어느 날 아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몇 해 전 조카의 사진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이유 없이 짠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아이는 한 톨의 걱정도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데,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어딘가 모를 슬픔과 아픔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의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기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스스로도 궁금했다. 하루는 지인과 이야기하던 중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 얼굴을 보면 그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겪을 일들이 먼저 떠올라. 힘든 일도 있을 거고 슬픈 일도 있겠지. 살아가며 겪을 다양한 일들을 이겨내야 할 아이를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월간서른’을 운영하며 종종 들었던 질문이 있다. “20~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는 아마 꽃다운 그 시절이 그립지 않냐는 의도가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내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요, 절대로요.” 현재 41살의 내가 가장 좋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좋았던 일보다 크고 작게 지나온 고민과 아픔의 시간들이 떠오르는 편이다. 그 시간을 힘겹게 이겨내고 지나왔는데 다시 돌아가라니, 말도 안 된다. 


이런 내가 특이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힘든 기억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왜 아이 얼굴을 보면 굳이 힘든 시간들만 생각이 났을까.


얼마 전 본 드라마에서 우연히, 내 생각과 똑같은 대사를 발견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조태훈은 이혼을 겪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연인 관계에 있는 염기정이 임신한 줄 알았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무심결에 “다행이에요”라고 답한다. 그는 나중에 기정에게 다행이라고 답한 이유를 설명한다. 


“아장아장 걷는 애들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30년 후에 쟨 어떤 짐을 지고 살아갈까? 어떤 모욕을 견디며 살아갈까? 나니까 견뎠지. 그 어떤 애도 그런 일은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난 태어나서 좋았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아니요.”


아장아장 걷는 이서의 앞날에 꽃길만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혁진

나도 태훈과 같은 생각을 했다. 태훈과 나의 바람은 하나다. 아이가 부디 좋은 일들만 겪길 바라는 것. 물론 태훈과 달리 난 태어나서 좋다. 태어나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좋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태어나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내 아이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 힘든 일들을 겪을 것이다. 학교든 사회든, 친구 관계든 부모인 우리 부부와의 관계든, 또는 태어난 이유를 찾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힘듦보다는 그 뒤에 찾아올 기쁨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아가 태어나서 좋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부모가 나를 낳는 결정을 해주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그러기 위해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이건 부모로서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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