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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Oct 03. 2022

아이가 걸으면 육아가 쉬워진다?!

썬데이 파더스 쿨럽

한 달쯤 되었을까? 이서가 걷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부모의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둘째, 육아가 조금 쉬워진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

드루와 드루와 ©강혁진

부모 몸이 힘들어지는데 육아가 조금 쉬워진다는 말이 얼핏 모순되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다. 놀랍게도 몸은 힘든데 육아는 조금 쉬워진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보통의 부모는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 매장에서, 공원에서, 심지어 거실에서도. 걸음마를 뗀다는 건 넘어지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넘어질 때 유난히 신경 쓰이는 이유가 있다. 무방비 상태로 넘어지기 때문이다. ‘이 자세라면 넘어지겠는걸?’ 따위의 자각이나 대비는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걷고 닥치는 대로 넘어질 뿐. 그러니 부모는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집사처럼 바짝 붙어 있거나 최소한 가까운 발치에서 아이의 걸음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러니 몸이 힘들 수밖에. 


그런데 동시에 육아가 조금 쉬워진다. 예를 들자면, 아이를 낳고 늘 트렁크에 챙겨 다니던 유아차를 꺼내지 않는 상황도 생긴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제 발로 땅을 디디는 것이 신기해서인지 여기저기 활보하기 마련이다. 유아차에 앉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아이가 실컷 걸을 수 있도록 부러 유아차를 챙기지 않기도 한다. 자고로 외출 준비물이 하나둘 줄어들수록 육아의 난이도도 낮아지는 법. 


이서가 걷게 되니 함께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정확히는 이서가 맘껏 걸으면 좋겠다는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간다. 대표적인 곳이 공원이다. 전에도 서울숲을 종종 갔지만 아내나 내가 걷지 못하는 이서를 안고 있어야 했다. 결국 넓은 공원에 가도 좁은 돗자리에 갇힌 셈이었다.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어느 주말, 다시 들른 서울숲 공원 한 편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이제 돗자리는 짐을 놓는 곳에 불과하다. 이서는 도통 앉으려 하지 않는다. 누구와 약속이라도 한 마냥 공원 끝에서 반대쪽 끝을 가로질러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이서 또래의 아이들과 내 또래의 부모들이 꽤 많이 나와 있었다. 개중에는 집에서 챙겨 온 비누거품기를 연신 하늘에 쏴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서는 비눗방울이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엄마나 아빠를 찾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비눗방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른 아이와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장착한 게임 속 캐릭터처럼, 아이는 걷기 기능이 추가된 자신의 두 다리를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걷는 아이. 이제 곧 뛰겠지?   ©강혁진


아내와 나는 늦가을의 더위 속에 아이를 따라다니며 땀을 흘렸다. 땅에 있는 돌멩이를 자연스레 입에 가져가는 아이를 막아야 했다. 땅이 채 마르지 않아 진흙이 있는 곳을 피하도록 아이를 들어 옮기기도 했다. 날씨를 잘못 예측한 탓에 두툼한 옷을 입고 나갔는데 앞으로는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기리라 다짐했다.


돌멩이를 입에 넣기 1초 전   ©강혁진


그럼에도 아이가 걷고 나서는 육아가 편해짐을 느낀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우리 품을 벗어나 제 발로 걷고 있으니 말이다. 1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이를 매번 안고 있어야 하는 체력 부담이 덜어지기도 한다. (종종 아이의 무게가 부담되어 ‘이서가 어서 빨리 걸어줬으면…’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음을 이제야 고백해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서가 걷기 시작하자 신세계가 펼쳐진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걷는 이서와 함께 할 다양한 일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조만간 여느 부모들처럼 비누거품기를 살 것이다. 그리고 이서 머리 위로 비눗방울을 마구 쏴줄 것이다. 크고 작은 비눗방울을 배경 삼아 걷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 이서가 조금 더 크면 야트막한 산에도 가야지. 조금 더 선선해지면 한강을 찾아 공놀이도 해야지. 내년 여름엔 집 근처 계곡도 갈 수 있겠지. 얼마나 더 크면 원반 던지기나 캐치볼 같은 놀이를 함께 할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할 것들을 상상하니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른다. 


아이의 걸음 하나마다 흐뭇한 상상 하나가 더해진다. 아이의 작은 걸음이 다 큰 어른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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