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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Nov 06. 2019

너와 나의 원더랜드*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엄마가 되고 가장 듣기 거북한 말이 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이는 벌거벗고 눈도 뜨지 않은 채 엄청난 목청으로 울어대며 태어나는데.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이 헐벗은 존재로 탯줄 하나에 의지해 말이다. 밥그릇은커녕 젖 무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한데 무슨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단 말인가. 물론 저 문장의 속뜻은 각자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낳아놓으면 어찌 됐던 아이는 큰다는 이야기이니 생기기도 전에 걱정하지 말고 낳기도 전에 추측하지 말라는 말. 많이 많이 낳아 잘 키우라는 의미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난 이 말이 너무도, 굉장히 불편하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태생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밥그릇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금수저 혹은 다이아몬드 수저라면 또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아이가 숟가락질을 제대로 하기까지도 최소 일 년이 걸리는 현실에서 타고난 밥그릇이 뭐 대수란 말인가.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밥그릇' 이론을 들먹이며 젊은이들에게 새끼를 더 낳으라 종용할 수는 없다.



 

  아이를 키우며 갖게 되는 가장 큰 감정은 책임감이다. 모든 기쁨과 슬픔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책임감이란 감정은 생각보다 방대하다. 아이의 의식주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단순한 문제부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확대되는 책임감의 영역은 학생이나 직장인 시절 감당해야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험지나 보고서에 자신의 이름을 쓰며 느끼는 책임감 따윈 책임감이라 명하기도 우습다. 내 피를 이어받아 세상에 나온 것들을 사람 구실 하게 키워낸다는 것은 애간장과 뼈를 녹이는 일이니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사람 키우는 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들을 부모들은 해 내고 있다. 매뉴얼이 없는 수행평가를 해 나가는 심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과 최고의 사랑으로 그렇게 키워내고 있다. 때로 남들 보기에 그 방식이 투박할지언정, 어쩌란 말인가 우리도 부모는 처음인 것을. 상황이 그러한 것을. 그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과 훌륭하고 자애로운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상황과 환경으로 부모 노릇을 단정 짓는 다면 세상 대부분의 부모는 참 서글플 것 같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그러므로 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나이 어린, 대책 없는 것 같은 엄마 '핼리'를 비난함에 반성한다.


그녀는 온갖 피어싱에 문신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어 보인다. 홈리스인 그녀는 이름도 휘황찬란한 플로리다의 '매직캐슬' 모텔에 장기 투숙하며 어린 딸 무니를 키운다. 그녀의 돈벌이라고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가짜 향수를 파는 불법 판매 일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이 그렇듯 향수 판매가 시원찮은 날은 밀린 방세를 내기도 버겁다. 결국 모텔에서도 쫓겨 날 지경에 이르자 그녀가 생각한 최후의 수단은 매춘이다. 어린 무니를 욕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정말이지 먹고살기 위해, 무니를 배 곯이지 않기 위해 선택한 생존방법이다. 어린 딸에 대한 책임감은 본인도 어린 엄마에게 매춘이라는 굴레까지 짊어지게 한다.


  하지만 '핼리'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임과 학대를 했다는 죄목으로 '아동보호국'에 의해 딸 '무니'와 격리 조치된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은 '무니'에게 갑자기 찾아와 엄마와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통보한다. 어린 무니는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력질주를 다해 찾아간다. 그리고 더 이상 널 볼 수 없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여섯 살 '무니'에겐 집이 없어 모텔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보다 사랑하는 엄마와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핼리'의 아이에 대한 양육 태도는 분명 잘못된 방식이다. 하지만 매춘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전 어린 미혼모인 그녀에게 사회와 제도가 보여준 책임감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텔 관리인인 바비조차 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무책임한 방임 주의자들이니 '지구에서 가장 마법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낳은 자식을 거두기 위해 스스로 살 방도를 찾은 '핼리'에게 비난의 칼은 이쯤에서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자기 나름의 책임을 진 이 세상 모든 '핼리'에겐 말이다.




주석 ; 제목의 '원더랜드'의 뜻은 이상하고 기이한 나라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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