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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13. 2019

우리는 결국 모두가 수행자

프리 솔로(free solo. 2018)

  일곱 살짜리 큰 아이가 있다. 내게 엄마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번뇌, 당황스러움을 처음으로 선물해 준 아이이다. 첫 아이이다 보니 첫 대면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했던, 매일 나를 엄마로 키우고 있는 아이이다.


  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어 갈 무렵 수영을 시작했다. 매주 두 번, 하루에 삼십 분씩 일 년이면 십일 개월을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그리고 일곱 살 즈음 지역 수영팀에 합류하였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팀은 제법 큰 규모이다. 아이는 그중 제일 어린 팀에 속하게 되었고 거기서도 제일 어린 나이의 팀원이다. 고등학생들의 수영 훈련을 보다 내 아이가 속한 팀의 훈련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오합지졸, 입가에 저절로 엄마미소가 떠오른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꼬꼬마 팀 아이들은 어떠 경쟁이나 긴장도 없다. 물속에서 노는 새끼 수달마냥 까불고 첨벙 대며, 때론 심각하게 스트로크를 하며 물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들의 훈련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그들의 몸이 보인다. 반복된 몸의 움직임과 사용으로 성장된 근육에는 성실함이 새겨져 있다. 아집이나 잡념이 없는 정말이지 정직한 근육이다. 집념과 복된 고집만이 있다. 매일의 훈련시간과 노력이 담긴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숙연하게까지 한다. 그들의 몸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다.


  나는 요즘 몸을 쓰는 일, 운동이든 노동이든 그들의 몸에 새겨진 것들이 다시 보인다. 관념적인 지식이나 허위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 굵어진 손마디나 숙련된 근육, 거짓 없는 실핏줄들이 일평생 하나를 위해 전진해온 도구인 것 같다. 묵묵히 일궈낸 작물의 뿌리가 이러할까. 곧은 신념이 얽혀 하나의 육체를 자라게 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가지지 못한 아니 내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몸의 수행이 새삼 부럽다.


  여기,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일을 왜 하나 싶은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솔로'의 주인공 알렉스 호놀드이다. 그는 암벽 등반가이다. 그냥 암벽 등반가가 아닌 기본적인 로프와 안전장비 없이 맨손으로 등반하는 프리 솔로 등반가이다. 그는 그저 등산화와 손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백묵가루 주머니 한통을 차고 거대한 암벽을 오른다. 2018년도에 개봉한 이 다큐 영화는 알렉스 호놀드가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암벽 등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2년에 걸친 준비과정부터 프리 솔로의 도전, 그리고 성공의 긴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알렉스 호놀드 ㅣ영화 '프리 솔로' 스틸컷

  

그는 도전하기 전 수십 번 루트를 점검하고 올라본다.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필요한 시간이면 헤드라이트 하나를 두르고 '엘 피탄'으로 향한다. 물론 프리 솔로에 도전하기 전엔 로프를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장치가 있다 한들, 암벽 등반에 무지한 내가 보기엔 리허설 조차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914미터, 일 킬로미터에 가까운 길이의 화강암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절로 깨닫게 하는 위압감까지 있다. 그런 암벽을 맨손으로 오른다는 건 어떠한 것보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하지만 그 현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알렉스 호놀드는 해냈다. 수십 번의 연습과 루트를 찾고 주변 환경을 체크하며 자신이 프리 솔로가 가능할 것 같은 최고의 시간과 최적의 컨디션을 찾다. 그 과정 너무도 길고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 것이었다. 그 여정을 묵묵히 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수행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2017년 6월 3일 마침내 그는 엘 피탄 정상에 맨몸으로 오른 역사상 최초의 등반가가 되었다.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그의 맨손 암벽 등반의 모습은 다큐멘터리로 기록되었다. 지켜보는 카메라맨들 조차 차마 바라보기 힘든 그 과정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해준다.  아직 여명 채 가시기 전 시작된 그의 첫 도전은  아침 햇살이 축복처럼 엘 캐피탄에 내리는 시간, 성공했다. 숨 죽이고 지켜보던 카메라맨과 동료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안도의 박수소리가 메아리쳤다. 알렉스 호놀드는 그제야 홀가분함과 기쁨이 섞인 미소를 보였다.


  세계 최고의 프리 솔로 등반가, 그의 손가락은 너무도 헤지고 딱딱해져 지문조차 성할까 싶다. 하지만 카메라에 비친 그것은 간결한 신념이 응집되어 있다. 한 손 한 손 바위의 틈을 찾아 움켜쥐고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은 수행의 모습이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고자 그 일을 행하는지 다 알 순 없다.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 조차 이겨내게 하는, 그에겐 너무도 가치 있는 수행임은 분명하다.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렇듯 어떤 행함에 미쳐 여러 해 동안 단련한 무엇이 있었던가. 육체를 통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 타인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지속적인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낙방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그 시절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단 한 줄을 쓰더라도 하루하루 성실히 행하게 한 그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안전장치 하나 없는 이십 대였는데 무엇이 나를 그렇게 확신에 차 글을 쓰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현재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결국 우리는 모두가 수행자이다. 비록 맨몸으로 등반을 하거나 위대한 무언가를 이뤄낼 순 없다 해도 참으로 감사하다. 긴 인생의 여정 우리는 모두 일궈내야 함을, 나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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