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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27. 2019

인생은 어차피 '독고다이'

'늑대아이'(2012)  

아직 못 본 너를 만날 수 있도록

배를 쓰다듬으며 언제나 바랬어

후 우우 후 우우 어떤 얼굴하고 있으려나

후 우우 후 우우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어?

                           ;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있네

이유를 들려주렴 전부다 이야기해보렴

괜찮아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을게

                          ;

반짜악 반짜악 무럭무럭 자라 주려무나

눈을 달리고 구름을 세며 비로 놀며 바람에 맞아가면서
                          ;

언젠가 네가 여행을 떠낼 때는

반드시 웃으며 배웅해줄게

우우우 우우우 하지만 조금 외로우려나

오오오오오오 부탁해 잘살아주렴


영화 '늑대아이'OST <어머니의 노래>


그러니까 나는 어떤 자식인가? 내 인생에 이렇게 답하기 자신 없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남보기에 성실하고 착한 그런 적당한 것이 아닌 내 안에 진짜로 숨겨져 있는 답, 그러니까 나는 어떤 자식인가?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내 안에 이런 조그만 생명체가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은 '내가 낳고도 믿기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첫울음을 터트리고 내 팔에 뉘어진 또랑또랑한 뒤통수의 감촉은 나로 하여금 생전 처음 느끼는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니. 나도 아직 덜 컸는데 내가 어떻게 사람을 키운단 말인가. 난 애완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는데 화분 하나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사람인데. 세심함과는 먼데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니.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한동안 아이를 마주 대할 때마다 불쑥 찾아오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도 젖을 먹던 아이가 너무나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면 왠지 행복한 아이로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샘솟게 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나는 나대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고 그렇게 오롯이 키워내면 돼지' 하는 근원 모를 자신감을 뿌리내리게 만들었다. 그 자신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긴 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딱 그만큼 나도 엄마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식용유를 바닥에 흩뿌려 놓고 온몸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것들을 닦아내고 화장실 변기 물에 손 넣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말리다 결국 '그래 생명에 지장만 없음 돼' 하는 의연함까지 갖게 한다. 아이들이란 원래가 사람을 좀 더 어른답고 담대하게 만들기 위해 보내 준 존재들이기에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그렇게 부모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난 여전히 내 아이들을 건사하고 기르느라 정신이 없어 나를 그렇듯 건사하고 길러준 내 부모는 안중에도 없다.


영화 '늑대아이' (2012, 호소다 마모루) 스틸 컷


내 부모들은 스스로 너무도 잘났다고 고개 빳빳이 쳐드는 자식들 앞에서 그저 묵묵히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고 키워냈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자기들 새끼 키우느라 여전히 너무도 피곤하여 그저 내 부모들은 알아서 아프지 않고 잘 살아줬으면 하는 이기심을 내비치며 산다. 늘 우리 부모는 괜찮았으면. 늘 어떤 말에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늑대아이' 속 '아메'가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해 달라고 하는 그것처럼. 내 어린 시절 내게 엄마가 건네준 그 괜찮다는 말이 늙어서도 여전히 지속되었으면. 늙음이 그들에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았'으면 하는 모든 자식들의 이기적인 바람 말이다.


'늑대아이'(2012)의 '유키'와 '아메'는 성장 후 서로 다른 두 개의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 알릴 수 없는 늑대의 후손을 키워내야 했던 '하나'는 담담히 하지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주며 '유키'와 '아메'를 길러냈다. '아메'가 원인모를 통증으로 잠들지 못할 때면 세상 모든 엄마가 그렇듯 밤새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엄마인 '하나'는 여전히 12년 동안 아이들을 길러낸 그 산속 집에서 가끔은 바람에 실려오는 늑대아이 '아메'의 울음소리를 위로 삼아 그렇듯 그 자리에 있다. '하나'의 외롭지만 너무도 씩씩한 그 엄마 다움이 왠지 부모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스럽다.


하지만 말이다. 왜 '하나'라고 쓸쓸하지 않겠는가. 마냥 씩씩하기만 하겠는가. 때론 그 고요함이 적막처럼 다가올 땐 지나간 세월들이 그립고 그리워 왜 아이들 키울 때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하고 웃을 수 없었을까 후회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의 엄마는 내게 긴 통화 끝 말씀하셨다.


"지나고 보니 너희들 키운 시간이 너무 빠르더라. 힘들고 지쳐도 지금을 즐기렴."


그리고 그 끝에 덧붙이셨다.


"가끔은 그래서 좀 외롭다."


그 엄마의 약함이 듣기 싫어 나는 세상 쿨하게 되받아쳤다.


"엄마 인생은 원래가 독고다이야."


엄마의 그 길이. 내 부모가 걸어간 그 길이 결국은 나의 길임을 모르는 이 얼마나 없는 딸의 건방진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방진 딸은 우리들의 부모가 오늘도 어제보다 좀 더 행복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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