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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25. 2019

살다 보니 미국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여행과 일상은 엄연히 다르다.

잠시 머묾과 터를 잡는 것, 그 사이에 머무는 수많은 행간을 읽기까지 7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거쳤고, 여전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때론 뽀송하고 하얀 궁둥이를 두들겨가며 무럭무럭 키워내고 있다. 그 일상이 삶이 되어 가는 시간, 나는 동에서 서로 주를 이동했다.


  하지만 터를 옮긴 다는 것은 여전히 서투른 것 투성이.

익히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신분이 변하며 상경했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대륙을 이동했다. 하지만 동에서 서로 가는 그 여정 역시 낯설기는 전과 다르지 않았으니 누가 내게 와 속성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라도 가르쳐 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수많은 경험에도 어리벙벙했고 입속에 맴도는 낯선 언어의 부자연스러움은 그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심장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이었다.


  이젠 시간이 흘러 관공서에 가 필요한 서류를 떼고 아이들 병원이나 학교도 도움 없이 다닌다. 하지만 마음 터 놓고 지낼 이곳의 벗 하나를 만들기가 참 쉽지가 않다. 그건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서로를 배려함에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마음 열기가 쉽지 않으리라. 대화를 이어가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공기의 적막감이 때론 마음을 짓누를 때가 있다.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은 내가 한창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보게 된 작품이다. 내 기억 속 기예르모 델 토로는 영화 '판의 미로'(2006)로 남아있다. 2006년 발랄한 대학생 시절 남자 친구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판의 미로'를 보러 극장에 들어갔다 극한 체험을 하고 왔기에 또 어떠한 기괴한 크리쳐가 등장할까 내심 긴장하며 관람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닦았다. 그 눈물의 의미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엘라이자가 불쌍해서도 양서류의 크리쳐가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서로 소통이 불가한 엘라이자와 크리쳐의 사랑이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불통에서 오는 폭력이 낯설지 않았고 소통에서 오는 사랑의 모양이 너무나 황홀해서였다.


  엘라이자와 크리쳐는 살아온 환경도 처한 상황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에겐 진심이라는 공통된 마음이 연결되었다. 이 진심은 소통을 하게 했다. 엘라이자와 크리쳐의 소통은 내가 그동안 타국인에게 느꼈던 소통의 부재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그들에게 내가 느꼈던 간극의 원인은 내 안의 진심의 부재였다.


  영화 속 엘라이자와 크리쳐는 오로지 몸짓과 표정으로 그들의 진심을 담아 소통한다. 엘라이자의 따뜻하게 쪄 온 달걀은 엘라이자의 크리쳐를 향한 따뜻한 진심이다. 서로를 향한 몽골몽골 한 마음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삶이 달라도 서로를 연결해 줄 수 있다는 것. 단순하지만 너무도 명획한 그 사실을 난 외면 했었다.


  나를 아프게 건든다. 그동안 적당히 마주했던 타인에 대한 내  마음가짐이. 소통할 수 없다며 툴툴대던 나의 이기심이. 때론 찐 달걀처럼 사소한 마음이 먼저인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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