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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25. 2019

세상 모든 여자가 50kg은 아니야

영화 '덤플링'(2018) 내 모든 아름다운 그대들에게

조심스레 체중계에 올라섰다. 적어도 태아가 빠져나온 만큼의 숫자는 줄어 있겠지. 하지만 체중계의 숫자는 멈출 줄 모른다. 산고 끝 아이를 품에 안은 기쁨은 찰나였다. 도대체 3킬로그램의 아기와 적어도 1킬로그램은 될 양수와 태반의 무게는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4킬로그램은 줄었어야 할 몸무게가 만삭, 애 낳기 전 무게와 100그램의 차이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다. 이건 적어도 새끼 낳느라 죽을 고비를 넘긴 어미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흔하고 뻔한 고민. 하지만 모든 산모들의 아이러니. 아이를 품고 부풀어 오르는 배만큼 올라간 체중은 아이를 낳은 후 언제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 누군가는 모유 수유를 하면 저절로 빠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 등을 토닥였다. 또 누군가는 애 돌잔치 때 한복 말고 원피스 입으려면 아기 6개월부터는 정신 차리고 관리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기가 돌 때까지 원래 체중으로 못 돌려놓으면 그 몸무게가 평생 너의 것이라며 절대 애를 품고 붙은 살들은 널 놔주지 않는다 했다. 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무자비한 말인가. 아기 낳느라 털려 나간 정신을 붙들 새도 없이 두 시간마다 젖을 물려야 하는 상황에 6개월 후 다이어트까지 해야 한다니. 엄마가 되는 과정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극한체험이었다.


내 친구 S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가 되기 전 한 줌이나 될까 말까 한 허리를 가졌던 그녀. 첫아이를 낳은 후 20킬로가 늘었다는 그녀는 아이가 첫 생일을 맞을 때까지도 남은 10킬로그램을 버리지 못했다. 아이의 생일을 기념해 가족사진 촬영을 했다는 친구는 내게 해사한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사진을 찍는데 내 덩치가 남편보다 더 큰 거 있지.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그러고 보니 사진 속 S는 남편의 몸 뒤로 숨어 어정쩡하게 반만 나와 있었다.


  "남편 뒤로 가면 좀 작아 보일까 하고"


씁쓸하게 웃는 그녀에게 '그래도 충분히 예쁘다'는 내 말이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나 역시 당시 애쓰던 시간을 돌려보면 그녀가 감내해야 할 체중의 무게가 남일 같지가 않았다. 그 시절 체중계의 숫자는 왠지 내 남은 자존감과 반비례하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자존감이 겨우 두 자리 숫자라니. 때론 인생의 무게가 하찮은 체중계의 숫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래서였을까? 단지 뚱뚱한 주인공이 전형화된 미의 기준에 반기를 드는 영화라고 보기엔 앤 플레쳐 감독의 '덤플링'(2018)이 내게 남긴 메시지는 컸다. 태어나보니 엄마는 미인대회 우승자. 이왕 태어날 거면 날씬하고 어여쁜 엄마를 닮을 것이지 낙천적이고 사랑스럽지만 너무나 뚱뚱한 이모를 닮을게 뭐람. 때론 공교로운 것이 운명인 것을 알지만 그 공교로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 억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엄연히 '윌로딘'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몸집이 둥글고 퉁퉁해 서양식 만두인 '덤플링'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그녀의 씁쓸하지만 유쾌한 미인대회 도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 주먹 꼭 쥐고 응원하게 만든다.


"Every body is a swimsuit body"

모든 몸이 수영복 몸매다.


무대 위에서 당당히 외치는 이 한 줄은 꽤나 감동적이며 통쾌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개그우먼 이영자가 수영복을 입고 방송에 출연했다. 당시 한 케이블 티브이에서 보인 그녀의 수영복 몸매는 모든 인터넷 뉴스판 연예면을 장식했다. 조금 통통하지만 정감 있는 그녀의 몸은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대중들은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고 열광했다. 하지만 난 그 열광 속에서 좀 통통한 사람이 수영복을 입고 방송에 출연한 것이 저리 주목받을 일일까 싶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날씬함이 자기 관리의 표본이고 미용 체중이란 말이 정상체중을 억압하는 사회에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애를 낳은 후 원래 체중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강박 역시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내 강박이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친구 S는 남은 10킬로그램을 감량하지 못한 채 둘째를 갖었다. 둘째의 임신 소식을 내게 알리며 S는


"둘째 낳곤 정말 뺄 거야. 설마 둘 키우는데 힘들어서라도 빠지지 않겠어."


라고 재미없는 농담을 날렸다.


하지만 S야 넌 충분히 아름답단다.

내 아름다운 그대들아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50킬로그램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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