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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29. 2020

안아줘!

엄마는 따뜻하니까

    "엄마, 안아줘!"

8살, 5살 남매가 제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엄마, 안아줘!"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밀 때 혹은 빨래를 정리할 때면 소리도 없이 불쑥 나타나 안아달라 외칩니다. 그럴 때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벗지도 못하고, 빨래를 미처 세탁기에 다 넣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꼭 안아줍니다. 길어야 5초, 아이들은 제 체온을 한 번 진하게 느끼고 나면 또 미련 없이 돌아서 할 일을 찾아 흩어집니다. 어떠한 동기도 없이 그냥 불쑥입니다. 지나가다가도 문득 엄마인 제가 어떠한 일에 열중 해 있으면 와서 한번 안아달라 합니다. 그리고 그저 씩 웃고 갑니다. 그 모습이 또 마냥 행복해 보입니다.


  육아 8년 차, 이제야 저도 아이들의 이 안아달라는 요구를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열일 제쳐두고 꼭 안아주게 되었습니다. 육아 초창기엔 혼자서 잘 놀던 아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와 안아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달려오면 아이가 어디가 불편한지부터 먼저 살폈습니다. 살림에 바쁘고 할 일은 태산인데 갑자기 들러붙어 안아 달라 징징대는 아들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 이것만 하고 안아줄게"라고 말하지만 아이가 엄마의 사정을 봐 줄리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안아주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제 다리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그나마 겨울이면 괜찮지요. 가만히 있어도 머리에서 뜨거운 바람이 올라오는 여름이면 너무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임에도 저만치 가 혼자 잘 놀아 주었으면 싶습니다. 나 더운 만큼 아이도 더울진대 아이는 아랑곳 않습니다. 엄마의 체온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면 그 좋아하는 로봇도 던져두고 달려옵니다. 아직 어린 둘째를 씻기느라 앞섶이 젖은 티셔츠를 잡아끌며 안아 달라고 보챕니다. 아이들은 또 어찌나 정확한지요. 대충 습관적으로 안는 척하면 다시 안아달라 합니다. 그럴때면 저도 모르게 장난감을 가리키며 "엄마 바쁘니까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어"라고 합니다.


시무룩해진 아이의 등,


그 등을 보면 또 울컥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안아주는게 뭐가 힘들다고...그런데 그땐, 4살 1살 아이들을 키울땐, 그 안아주는게 힘들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HUG> by jez alborough


  아이의 안아달라는 마음말을 해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경험,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습니다. 첫애가 5살, 그러니까 둘째가 이제 2살이 지나 기저귀 떼고 숨 좀 돌리게 되니 첫애의 안아달라는 말을 고요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잘 놀다가도 왜 함께 한 공간에 있는 엄마에게 다가와 안아달라고 할까? 그리고 정성을 다해 꼭 안아주면 세상 쿨하게 잘 노는 것일까?


  특히나 제 첫째는 활발하고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을 잘 해 유치원을 보내면서도 한번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어본 적이 없는 아이었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유치원에서 손을 흔들던 아이였고 선생님들, 유치원 친구들과도 유대관계가 좋은 아이었지요. 때문에 저는 늘 첫애는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였기에 아이의 안아달라는 요구가 어떠한 '결핍'과 연관되어 있는게 아닌지 지레 짐작하고 걱정스럽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를 키우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첫째가 혹시 마음의 응어리가 있는것이 아닌지 싶었습니다. 아이는 그런 불만을 나에게 '안아달라'는 것으로 표현을 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어느날 함께 책을 읽다가 첫째에게 물었습니다.


"무럭이는 왜 엄마한테 한번씩 안아달라고 해?"


아이는 말간 눈으로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툭 말합니다.


"엄마는 따뜻하니까!"


그리고 덧붙이더군요.

 

"엄마는 따뜻해서 엄마를 안으면 나도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 춥지도 않고"


  아!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이의 마음말은 이해하지 못했던, 아니 이해해 보려 하지도 않았던 제 지난날의 순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무리 의젓한 아이도 아이는 그저 아이일뿐.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동생과 놀다가도, 문득 마음이 허전해지고 아이는 엄마를 찾는 것인데 저는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나고서야 아이의 감정에 큰 상처가 난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두려워만 했을뿐 아이의 마음말을 알아채지 못했었습니다. 아이는 아직 덜 자라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의 길들을 알지 못할때 엄마의 온기를 통해 '괜찮음'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그저 "따뜻함"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극복 할 수 있음을, 아이의 명쾌한 마음말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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