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로 보는 소셜 미디어와 미국 대선
개인의 인식과 행동 변화가 소셜미디어 상의 유일한 상품이다.
우리가 무료로 이용하는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다. 무료 이미지, 무료 bgm 사이트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얻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사용하는 것 모두가 무료다. 그러나 이들은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애초에 무료라고 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상품은 이러한 서비스가 아니라 유저, 즉 인간이기 때문이다. <소셜 딜레마>는 소셜 미디어의 이러한 구조를 지적한다. ‘인간이 팔리는 곳’. 그리고 이 구조가 질적으로 노예 시장, 장기 매매 시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과한 연결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결국 끌어낸 사회적 영향을 보면, 노예 매매나 장기 매매만큼이나 끔찍한 건 사실이다.
이렇듯 유저들을 팔아먹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그들에 대한 막대한 데이터다. 여기서 감시 자본주의가 비롯된다. 가끔 밤늦도록 할 것도 없는데 무의식적으로 계속 피드 새로고침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경험이 있다. (아마 누구라도 있을 것) 스크롤을 당겨 새로고침하는 디자인 자체가 슬롯머신에서 착안한 것이며 슬롯머신과 새로고침 사이에 '중독성'이라는 매개가 있다는 점이 좀 충격적이었다. 지메일 알림, 인스타그램 새로운 가입자 추천 등등이 사용자 편의를 위한 기능이라 생각했는데 전부 사용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전부 알림 해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시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완성판이 바로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에 관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고도로 복잡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그 자체로 감정적인 인간보다 더 객관적인 것으로 인식돼왔다. 유튜브에서 갑자기 나타난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봐도, 뭔가 데이터를 조합해서 알아서 어련히 추천해줬겠거니 하는 생각이 우리 기저에 깔려있다. 내 행동 양식을 분석해서 알맞은 콘텐츠를 추천해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편리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목적은 ‘유저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이 목적이다.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우리는 모든 기업이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는 ‘내게 편리하게끔’ 맞춰져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유저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은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네이버 상품만 잘 보이게”… 검색 알고리즘 조작에 과징금 267억 (2020.10.06 한국일보)
온라인쇼핑의 검색 알고리즘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자사 상품을 더 자주 노출되도록 한 네이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네이버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플랫폼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고, 검색 결과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소비자를 기만했다고 판단했다. (중략)
알고리즘은 객관적이지 않다. 우리가 이용하는 플랫폼 하면에 뜨는 모든 것들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고, 동시에 나를 위해 큐레이팅된 화면도 아니며 오로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짜 맞춰진 판이라는 것을 슬슬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고,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다큐도 나온 게 아닌가 싶은데)
알고리즘은 유저들을 광고주에게 더 잘 팔아먹기 위해 각 유저들에게 맞춤형 화면을 제공한다. <소셜 딜레마>에서는 이를 ‘계산된 세상’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다니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는 일명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학생이었고,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페이스북 피드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의 게시글뿐만 아니라,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나 비디오 채널이 주를 이뤘다. 그래서 네이버 댓글이나,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면 나오는 보수적인 메시지들이 굉장히 ‘소수’고, ‘비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을 벗어나고 보니 내 피드를 가득 메웠던 닷페이스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한겨레보다 조선일보 구독자가 100만 명이 더 많았다. 뭐가 옳고 그른 걸 떠나서, 내가 본 페이스북 속 세상이랑 실제 세상을 이루는 사상의 비율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주로 세상을 접하는 방식이 소셜 미디어였고 소셜 미디어는 나를 위해 ‘계산된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는 ‘배제’다. 편향된 세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 세상과 모순되는 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이 도저히 좌파를 상식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혹은 그 반대)과 같다. 근데 신문에 있어서는 이제 우리가 어느 신문이 어느 쪽으로 편향적인지 알고 있지만, 소셜 미디어에 한해서는 아직 그 정도 인식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신문 보다도 소셜 미디어가 너무 인간의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도 문제다. 소셜 미디어가 보여주는 계산된 세상 = 실제 세상이나 다름없어진 거다. 그렇다 보니 내가 보는 것만 믿고, 믿는 것만 보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결국 그 결과는 분극화다.
“개표 중단” vs “모든 표 집계” … 두 쪽으로 ‘갈라진 미국’ (2020.11.05 JTBC)
개표는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었고,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미국은 '두 동강이 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양측 진영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도 트럼프와 바이든 지지자들은 극명하게 반으로 나뉘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죠.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 카드를 꺼내 들고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면서 지지층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된 내용을 최종혁 반장 발제를 통해서 보고 추가적인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13193)
미국 대선이 한창이다. 보면서 미국 대선 시즌에 맞춰서 나온 다큐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었다.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분극화를 바탕으로 하고, 또 가속하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네거티브를 위해 지지자를 집결하고 분열과 분노를 조장한다. 2016년 대선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되자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해 당선을 미리 축하했다. 보통 그래 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는 서로의 존재와 세상을 부정하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서로의 승리를 선언하지 못해 안달이었고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 소셜 미디어는 조기 승리 선언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까지 실시했다. 왤까? 조기 승리 선언은 소셜 미디어에서 지지자를 일시적으로 집결하고, 향후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결과를 부정하고 불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적 분열에 소셜 미디어가 끼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 지금 미국 사회는 소셜 미디어와 각종 가짜 뉴스로 완벽히 나뉜 두 개의 세상이 병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공존이 아니라 병존인 이유는 서로 1도 인정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진행될수록 미국이 개막장이 돼가는 걸 보면서 처음에는 트럼프 같은 정치적 이단아... 말썽꾸러기(?) 때문에 생긴 일인가 싶었는데 이 다큐를 보고 상당 부분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소셜 미디어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끌어내고 있음을 인지하고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플랫폼 스스로 자정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며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그건 가능하지도 않고 딱히 적절한 해결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인데요... 다큐에서 이통사 관련 규제는 많은데 디지털 프라이버시 규제는 적다고 언급한 것처럼, 소셜 미디어가 이통사처럼 조금의 역사를 더 거치면 아마 규제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너무 낙관적인가). 실제로 그런 규제 사례가 점점 생기기도 하고? 중요한 건 사람들이 알고리즘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맹신을 합리적 의심으로 바꾸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