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식구의 그때 그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유독 그렇다. '그때 그랬었잖아~'라는 말에 '그랬나?'로 대답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당장 오늘 할 일, 내일 해야 할 일들만 기억하기에도 버거운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문득 가족 카페에 들어가 봤다.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아빠가 20년 전 만든 다음 카페. 카페 이름은 '카메라와 성일이네'다. 아빠가 좋아했던 취미인 '카메라'에 동생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20년 전 나는 6살, 동생은 4살이었으니 카페에 글을 쓰기는커녕 컴퓨터 전원 켜는 방법도 몰랐을 거다. 그래도 아빠는 나와 동생의 다음 아이디까지 만들어서 여섯 식구가 전부 가입한 이 카페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상을 차곡차곡 카페에 적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이 컴퓨터 전원 켜는 법을 배우고 타자를 칠 수 있게 되면서, 카페는 여섯 식구가 올린 이야기로 가득해졌다. 가족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 산악회에서 설악산을 다녀온 아빠의 감상문, 고등학생이 된 언니의 소감, 사남매 뒤치다꺼리가 종종 버거워졌을 엄마의 넋두리까지... 사실 집단적 독백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꽤 오랫동안 카페는 시끌시끌했다.
그러다가 사남매는 하나둘씩 성인이 되었다. 세상에는 가족 카페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났고 카페에는 1년에 한 번씩 문득 생각나서 들어온 사람이 적은 '오랜만에 들어왔네요' 따위의 글만 남았다. 뭐, 가족 간의 대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가족 단톡방이 생기면서 굳이 카페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탓이 제일 컸다.
며칠 전 문득 들어간 카페에서 오래 전의 글들을 읽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젊은 시절 부모님이 꼭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 가족과 카페 속의 가족이 같은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꼭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페에 기록된 그날의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때 처음, 어린 시절을 제대로 회상하지 못하는 내 빈약한 기억력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이 카페를 만들어두었던 20년 전의 아빠에게 감사했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오래 전의 소중한 날들을 다시 꺼내어볼 수 있게 간직해주어서. 20년 전 아빠가 카페를 만들고 첫 게시글을 올릴 때, 20년 후 26살이 된 셋째 지영이가 이 글을 읽으리라 상상하긴 했을까 싶다마는, 그래도 그런 날이 오게 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카페에 간직되어 있던 우리 가족의 오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다시 추억해보려 한다. 시간이 흘러 잊어버린 그때의 이야기와, 또 그 당시에는 어려서 몰랐던 엄마, 아빠의 이야기까지. <카메라와 성일이네>에 담긴 여섯 식구의 20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